언젠가 어떤 분이 내게 말했다. 인생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고. ①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인생, ②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인생, ③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인생, ④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는 인생. 언뜻 들어서는 다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어마어마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①번의 경우에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피하고 싶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아주 피곤한 인생이다. 아마 대다수의 삶이 여기에 속할 텐데, 정말 피하고 싶은 상사나 가족 등이 있어도 피할 수 없는 삶이란 매우 고달플 것이다. ②번의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일 텐데, 그저 싫어하는 사람을 조금은 피할 수 있는 작은 사치를 가졌을 뿐 크게 다를 건 없는 인생이다. ③번은 단순히 싫어하는 사람을 피하는 것을 넘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가끔 만날 수 있는 인생으로 어느 정도 시간적으로나 마음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단계의 인생이다. ➃번이야 말로 모두가 원하는 인생일 것이다. 항상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인생에 대하여 주도적으로 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라는 말인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유명한 철학자 니체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낙타'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타는 오직 '나는 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뭘 해야 한다는 목적보다는 주인의 짐과 정해진 목적지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는 지극히 수동적인 존재의 상징이다. 사실 우리 대다수는 이런 낙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군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싶지 않겠냐마는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아무 가진 것도 없이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인생을 처음부터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라도 한 번 꿈을 가져보고 계획을 세워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야만 한다.
핸드폰 배터리의 경우 0%와 1%는 천지차이이다. 0%는 그냥 꺼짐 상태이지만, 1%는 그래도 켜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0%에서 1%가 되는 것이, 1%에서 10%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0%의 가능성으로 사는 삶보다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1%의 가능성을 가지는 그 삶이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 분명하다. 단, 1%의 가능성도 가져 보지도 못하고 꺼짐 상태로 인생을 낭비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 소중하고 고귀하다.
나의 경우는 정말 운이 좋게도 ③번 단계를 넘어, ④번 단계를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조금만 더 내려놓으면 충분히 ④번의 단계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아직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조금 여지를 남겨놓은 상황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때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즐겁고 감사한 일인데, 나의 인생을 내 스스로 결정하고 살 수 있는 인생, 누군가의 결정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란 정말 감사하고 과분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나 혼자만의 축복으로 끝날 게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인들도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며 목이 쉬어라 외치다 보니 영광의 성대결절까지 얻게 된 것이다. 그런들 어떠하리.. 모두 함께 즐겁고 행복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인생이 될 수만 있다면 이까짓 성대 아낌없이 바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