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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Dec 19. 2020

아들의 사춘기에 대한 소회

아들 둘 애비의 비애 (댕댕이 포함 아들 넷)

 
적어도 내 기억엔 나에게 사춘기가 없었다. 어머니의 증언으로도 비슷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무지 가난했었음에도 늘 밝은 성격으로 사춘기라는 것 없이 무난히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 시절 누구나 다 그랬듯, 맞벌이 부모님은 어린 남매를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었으나 크게 삐뚤어지지 않고 자랐다.
 
딸만 둘이면 금메달, 딸아들은 은메달, 아들딸은 동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우리 집이 바로 그 목메달이다. 아들 녀석만 둘이다 보니,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다. 현재 중3인 큰 아들 하진 군은 6학년을 접어들면서부터 조금씩 소심한 반항이란 걸 시작하더니 중1 들어서 본격적으로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해 아들과의 말다툼에 분을 못 삭인 나는 손으로 벽을 세게 내리치다가 3개월간 손에 깁스를 하고 다닐 정도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한 여름에 깁스 사이로 어찌나 똥내가 나던지.. 그래도 남들보다 중2병이 빨리 왔고 빨리 지나가겠구나 하는 조금의 안도감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웬걸 중2가 돼서 엄마의 키를 넘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중2병이 찾아와 부모 말을 개똥으로 듣고 지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시작했다. 중1 때의 그 만행들은 인트로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 것이다. 정말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일까 싶었다. 
 
중3이 되면 좀 잠잠해지려나 싶었지만 흑.. 코로나로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오히려 갈등만 더 커지는 것이었다. 아.. 아내와 아들 사이에서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인내를 해야만 했다. (이때 나는 내 신세를 마치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서 부처님이 될 수밖에 없던 문대통령에 비교하곤 했다. 감히..) 
 
상반기를 지나면서 고집불통 하진이가 서서히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점점 늘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피방도 가야 하고, 저녁도 사 먹어야 하고 가끔 옷도 사러 다녀야 하고..
 
적정한 선에서 끊임없이 밀당하고 서로의 요구를 협상하며 나름 평화로운 관계가 정착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최근 한 달 동안은 집에서 큰 소리가 한 번도 나질 않았다. 오늘도 족발과 보쌈을 먹으며 한껏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진짜 남북관계처럼 우리 집에도 다시 평화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풋! 하지만 나는 아들이 둘이 아니던가. 이 모든 진행 상황을 빠짐없이 지켜보던 예비 중2병 세력이 다음 사춘기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6학년 졸업반인 둘째 우진이의 시대가 곧 개막될 것이다. 또 3-4년간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한 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만큼은 사춘기 패씽하고 보낼 것인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오늘도 마지막 족발 한 점과 마지막 소주 한잔을 나눠마시며 아내와 함께 결의를 다지고 있다. 덤벼라 우진아!


▶ 10년전쯤의 사이좋은 아들들 (닌텐도 wii)

▶  1년전쯤의 웃는 것이 어색한 총각들 (그 후로 둘의 투샷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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