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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21. 2024

핑계가 많은 사람들

성공은 하고 싶지만, 네 조언은 듣고 싶지는 않아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것을 좋아한다. 솔직히 나 같은 초복합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상담에 최적화되어있기는 하다. 왜냐하면 고민(사건)을 단층적으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아주 심도 있게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을 하고 그것에 대한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뻔하지 않은 의견을 도출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담받는 사람 자신 보다 그 사람의 상황, 환경, 관계 등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한 뒤에 꼭 필요한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와서 새로운 고민에 대해 상담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먼저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높은 빈도로 내가 먼저 오지랖을 부릴 때가 많다. 옆에서 지켜보다 너무 답답한 결정을 할 때, 혹은 조금만 바꿔도 많은 부분 개선이 되어 삶의 질이 좋아질 게 눈에 보이는 경우 먼저 묻지 않아도 쓸데없이 나서서 조언을 하곤 한다.


그중 반정도는 뜻밖의 오지랖에 고마워하면서 노력하거나 실천하지만 반정도는 듣는 시늉만 하고는 결국 자기가 해오던 대로 하는 사람도 있다. 간혹 먼저 조언을 구하러 와서 열심히 상담을 듣고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원래 하던 대로 하는 신박한 경우도 있다. 물론 나의 조언이나 상담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아픈 환자에게 '술, 담배 끊고 운동하세요' 같은 뻔한 조언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과 관계 등을 최대한 고려하여 70~80% 이상은 타당한 이유를 가진 조언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본인이 듣고 싶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절반에 해당하는 후자의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매우 크다. 즉, 자신의 잘못된 습관이나 판단에 대해 지적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면 방향을 봐야 하는데 지적에 대한 변명을 하기에 급급하다. 간혹 내가 오해하고 있거나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조언을 할 경우 방향이 완전 달라지는 경우가 없지 않기에 최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지만 대부분 자기변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For Example)


우리 회사의 사옥이 통임대 계약이 되면서 1층의 카페가 사라지고 회의실 겸 라운지로 바뀐다고 했다. 우리 좁은 골목 안에 우리 사옥 1층과 앞 건물 카페까지 딱 2개의 카페가 존재했는데, 이제 앞집 카페 혼자 남게 된 셈이다. 새로 이사 오는 회사는 엔터 회사로 직원만 70~100명 정도 된다고 했고, 엔터 쪽이라 밤샘 작업과 오고 가는 손님이 매우 많을 것이라고 했다.  


앞집 카페에 커피 한잔 마시러 왔다가 젊은 사장님이 물어보기에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에 대한 각종 정보를 알려주면서 문득 이 카페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러 가지 다양한 조언을 했다. 단체 고객들이 올 경우를 대비해 좌석 배치를 좀 바꾼다던지, 업무를 보기 쉽도록 테이블 높이를 조정한다던지, 커피의 맛을 보다 보편적인 맛으로 약간 조정한다던지 하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새로 오시는 분들이 상암동 방송 타운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이전하는 것이라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에 익숙한 입맛일 가능성이 높아 지금의 신맛을 지양하고 보편적인 맛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다. 또 1층 카페가 사라짐에 따라 앞집 카페에 단체로 올 확률이 높은데 지금의 좌석 배치는 7~8인이 와도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이동하기 쉽도록 배치를 조금만 바꿔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밖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여하튼 이런저런 다양한 조언들을 하는 동안 젊은 사장님은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걱정하기보다는 원두를 왜 바꿀 수 없는지, 좌석을 왜 바꿀 수 없는지를 나한테 끊임없이 설명했다. 그런 핑계를 들으면서 나는 솔직히 중간에 그만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냥 내 얘기를 듣고 취사 선택하고, 자신의 생각을 보태어 새로 이사 올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면 그만인 것이다. 아무튼 그러거나 말거나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 몇 가지 조언을 더 건네고 카페를 나섰다. 



일주일이 지나 사무실에 볼 일이 있어 다시 그 카페를 찾았다. 솔직히 바뀌어 있을 거라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일주일 전과 단 한 개도 달라지지 않은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우리 사옥은 이미 공사를 마치고 일부 직원들이 입주했고 내일 본격적인 이사가 시작된다. 일주일이라는 준비 기간을 알려줬음에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 골목에 유동인구가 없음을 한탄하고 있고, 경기가 어렵다는 하소연만 늘어놓는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참 많이 만나봤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할 수 없는 핑계만 찾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외부의 환경으로 돌린다. 나도 혈기 왕성(성대 싱싱)하던 시절에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찾아가서 끊임없이 조언(이라 부르고 잔소리라 읽는)을 늘어놓았다. 한 번의 성대 결절로 고생을 하고 난 후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사람의 깜냥이 거기까지인 걸로 편하게 생각하면 참 편한 것을 그동안 왜 그렇게 못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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