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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07. 2021

어머니는 청소 미화원

2021년 어버이날 기념 헌정 글


어버이날 맞이해서 지지리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온 썰 푼다.txt


어머니는  15년째 서울대학병원 청소 미화원으로 일하고 계시다. 자식새끼들  시집장가보내고 손자손녀 5명이나 되는 마음부자이시다. 처음엔 당신께서도 청소일이 조금 부끄러우셨지만 지금은 너무도 당당하게 일하고 계시다며 자랑스러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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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정확히 1년이 되던 날에 부모님은 3살 먹은 누나와 나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우리 시대에는 누구나 그랬지만 정말 가진 게 빈 주먹뿐이었던지라 어린 시절부터 늘상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네 가족의 모습이 정말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우리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때는 우리의 가난이 불편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게 당연했던 것처럼 살았던 것다. 당시에는 대다수의 친구들이 그 정도 형편이었으니 더 그렇게 느꼈을 법하다.


아버지 직업은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양복점을 하다가 잘 안돼서, 인쇄소를 하시는 친척분의 회사에 들어가 거의 20년 넘게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사셨다. 술도 안 드시고, 여행도 안 가고, 노름이나 사치도 없이 그저 일과 집뿐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참 재미가 없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주변에 사고 치는 아버지들에 비하면 더없이 훌륭한 편이라 그런대로 만족하고 살았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셨던 것 같다. 국민학교 졸업이 전부인 어머니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란 게 사실 뻔하디 뻔하지 않은가. 내 기억의 가장 오래된 곳에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던 모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그 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주 조그마한 실내 포장마차를 하셨다. 학교를 마치고 실내 포장마차 본격적인 영업시간 전에 밥을 먹고 집으로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중3쯤 되던 시절인가 아파트 세차 같은 걸 시작한다 하셨다. 압구정동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에 정기적으로 월 세차를 해주는 일이었는데, 어린 나이였던 내가 보기에도 여성의 몸으로 하기에는 꽤나 힘들어 보이는 일이었다. 1년쯤 지나자 집 근처 신축 아파트 세차권을 인수하여, 직접 운영하신다 하여 고1이던 시절에 새벽 학교 등교 전에 도와드렸던 기억도 있었다. (지난 글 참조 : https://brunch.co.kr/@zinzery/59)


IMF로 경기가 어려워지자 아파트 정기 세차하는 세대가 급격히 줄어 아파트 월 세차를 접고, 바로 병원 청소일을 시작하셨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처음 청소일을 시작하셨는데, 그 당시 어린 마음에 그게 상당히 상처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성숙하지 못한 생각이었지만 당시 어머니가 청소일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표현은 못했지만 청소일 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또 내가 금전적인 지원을 해드릴 수 없는 사회 초년병이었기에 속앓이를 했을 뿐이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아들이 어엿한 사업가가 되고, 사옥까지 있는 법인의 대표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계속하실 생각이신 듯하다. 그곳에서 일하신지도 벌써 올해로 15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공공기관 필수 노동자에 대한 직고용 정책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학병원 정규직 청소미화원이 되셨다. 정년퇴직을 1년 반 정도 남긴 작년 이맘때 정규직으로 전환되셨고, 이제 반년 정도 후면 정년 퇴직을 하게 된다.


18살에 결혼하여 20살에 누나를 22살에 나를 낳으시고, 한 번도 쉬지 않고 근 40여 년 동안 새벽일을 하셨으니 오히려 쉰다는 것 자체가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 인생으로 보면 아직도 20년 이상 더 살아가실 날이 남았으니 지금 일을 그만 하시는 것도 어색하실 수도 있겠다. 누나와 나는 모두 결혼과 육아까지 끝마친 상황이니 이제 은퇴하시면 오히려 심심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꼭 벌어야 할 필요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아놓으신 집과 돈으로 남은 여생 충분히 사실 수 있으시니 코로나 끝나면 여기저기 여행 다니시며 그동안 못 즐긴 인생이나 편히 즐기셨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 성격에 좀이 쑤셔서 마냥 쉬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버이날 #어머니감사합니다 #아버지감사합니다 #부모님감사합니다 #카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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