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 루이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그녀는 장애 때문에 가족들에게 괄시를 받고 있다. 결국 집을 나와 에버렛의 가정부가 되고 그와 함께 살면서 그림을 그려 어느덧 유명한 화가가 된다. 영화의 제목은 내 사랑.
그와 그녀는 서로 사랑하게 된 걸까. 핏줄도 주지 못한 사랑이 아니었던가. 위장결혼을 밝혀내려는 이민국 직원이라도 된 듯 매서운 눈으로 영화를 쏘아본다. 사랑에 냉소적인 이 삐딱한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 테다.
영화는 숙모와 오빠의 티격태격으로 시작한다. 고스란히 다 듣고 있던 모드는 애써 밝게 오빠에게 집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물어보지만 이미 집을 팔아버렸단다. 오빠와 숙모는 그녀의 권리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다.
모드가 눈물을 훌쩍이며 잠들었다면 뻔한 스토리일 테지만 천만의 말씀. 예쁘게 잘 차려입고 클럽으로 가 둠칫 둠칫 댄스를 즐기는 우리의 모드! 자신의 클럽행을 비난하는 숙모에게 "한번 가보시라. 푹 빠질 것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장애로 비틀거리는 몸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당당히 클럽에서 어깨춤을 즐기는 모드의 활약상이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잠깐 모드의 미래 남편 에버렛을 만나볼 때다. 보육원에서 자란 에버렛은 훤칠한 외모와 체격을 갖춘 남자다. 자신의 작은 집을 관리할 가정부를 채용하려고 잡화점에 왔다. 더럽고 잔뜩 찢어진 옷을 입은 그는 공격적인 어투로 연신 그거. 그거를 뭐라고 하지? 그거. 타령이다. 단어도 잘 모르고 문장력도 없다. 교육을 받지 못한 데다 요령과 배려도 부족해 보였다.
가정부를 채용한다면서 잡화점 주인이 써준 작은 전단을 두 손 높이 들어 알림판 위에 붙여놓는다. 키가 175센티미터 이상 되는 가정부를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주인공인 두 사람을 만나봤다. 예상대로 모드는 에버렛의 집에 가정부로 일하게 된다. 물론 처음에 에버렛은 모드를 거절했지만 보육원 원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만약 누가 찾아온다면 채용하라는 말에 솔깃해 그녀를 직접 데리러 간다. 에버렛은 자신을 처음 찾아온 그녀가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신체적 결함 역시 자신이 그녀를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이 됐을 것이다. 음식과 돈이 중요한 에버렛에게는 함부로 부릴 일꾼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뜻밖의 훈남을 발견했다. 성질 고약한 에버렛때문에 욕이 나오려던 찰나 발견한 보석 같은 멋진 남자다. 에버렛의 동료 어부 프랭크다. 처음 만난 모드에게 손을 문질러 닦고 모자를 벗어 정식으로 인사를 청한다. 그 과정에서 모드가 살짝 유머 섞인 말을 하자 에베렛이 그녀의 뺨을 후려친다. 프랭크는 그걸 보고는 즉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천천히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고개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건넨 자신을 자책하는 건지 뺨을 맞은 그녀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주인공은 그였다.
다시 모드와 에버렛의 작은 집으로 들어가 보자. 집은 나날이 청결해지고 윤이 나고 있다. 모드는 작은 페인트통을 발견하고 선반을 새로 칠한다. 매일 조금씩 자신의 그림을 여기저기 그리기 시작한다. 거칠고 열등감이 많은 에버렛을 살살 구슬려가며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있다. 외상장부를 작성하고 그림을 사러 온 샌드라에게 그림값 흥정을 야무지게 한다. 값이 지불된 그림을 팔지 않겠다고 제 목소리를 똑 부러지게 낸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입주 가정부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모든 상황에서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결국 모드는 샌드라를 통해 그림을 판 것이 계기가 되어 점점 더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새 에버렛은 바닥을 쓸고 감자 껍질을 깎고 있다. 모드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순수하게 그녀의 창작활동을 지원한다기보다는 그녀의 그림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는 것은 돈은 벌지 못하지만 그녀가 그린 그림은 괜찮은 가격에 팔리고 있으니 돕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영리한 모드는 자신의 그림 작업을 에버렛과 함께 하는 사업이라고 치켜세워준다. 그렇게 그들의 사업은 번창하고 결혼을 해서 그녀 자신의 명예도 지켰다. 서로가 손해보지 않는 선택들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도 불쑥불쑥 에버렛은 모드를 상처 주기도 잊지 않았다. 원래 둘은 이어질 수 없는 극과 극의 성향인 탓이다. 섬세하고 유머러스한 모드와 거칠고 단순한 에버렛이 만나면 모드가 눈물을 흘리게 마련이다.
집을 나간 모드가 돌아오지 않자 에버렛이 그녀를 찾으러 온다. 자신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비로소 긴 세월을 지나 모드가 자신의 인생에 더없는 행운이었으며 그녀가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안다. 사랑이라는 놈의 얄궂은 얼굴을.
내가 너를 사랑하니 내 곁에 있어달라는 말과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네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라는 말의 차이를. 사랑이란 어디까지나 나를 기준으로 내가 먼저 채워져야 행복할 수 있다.
막막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삶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였는가 아무리 분석을 해봐야 나아지는 것은 없다. 특히 내 잘못과 내 선택이 아닌 것으로 힘들다면 더욱 그렇다. 사실 인생은 우리가 선택을 잘했든 못했든 그것에 상관없이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진다. 반드시 그렇다. 벌어진 일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만 아무튼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불행한 삶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선택이라도 엎어진 그 자리에서 나를 조금 더 웃게 하고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길을 가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책임지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내 인생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져야 한다.
결국 좋아하는 그림을 매일같이 그리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나 스스로 내 인생을 방치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난 사랑받았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생의 마지막 순간.
까치발을 하고 폴짝 뛰어 전단지를 움켜쥔다.
"가정부 구함. 청소 도구를 반드시 지참할 것. 에버렛 루이스에게 연락바람."
그 선택이 그녀가 전단지를 버리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사진 출처 : 영화 내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