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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터졌다 Jun 02. 2021

나만 그런겨?

기여. 아니여.

아주 예전에 코미디프로를 봤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시장에서 상인이 농산물을 팔고 있다. 상인은 충청도 토박이였다. 새초롬한 한 여자가 다가와 이것저것 물건을 살피다 문득 열무 한 단(열무가 아닐 수 있지만 그러한 농산물쯤.)을 들어보며 묻는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또박또박한 말투다.

상인은 슬쩍 한번 쳐다보고는 마지못해 대답하듯 툭

"오천 원 이유"

여자는 반짝 눈이 빛난다. 싱싱하고 연해 보이는데 가격도 제법 저렴하다. 얼른 몇 단 사려다 문득 시장의 셈이 그런 거지 싶은 생각이 들어 흥정을 벌인다.

"어머. 비싸다아...한 사천 원에 주세요. 몇 단 살게요."

상인은 저 멀리 푸른 하늘 어디쯤 쳐다보고 있다.

못 들었나? 여자는 재차 묻는다.

"아저씨. 사천 원에 깎아주실 거죠?"

"아유... 남는 것도 없유."


느리지만 분명히 말하는 상인. 여전히 저 멀리 어디쯤 바라보고 있다.

물렁해 보이는 상인이 답답하지만 여자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어머. 아저씨. 저기 가게는 사천 원에 하던데 여기 열무도 시들었는데 그냥 아저씨도 사천 원에 주세요. 네?"

상인은 눈을 내려 자신의 발끝을 쳐다본다. 여자는 이제 사천 원으로 확정된 듯이 활짝 웃으며 열무 몇 단을 골라보려는 듯 다가선다. 그러자 상인이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여자에게 한마디 던진다.


"냅둬유. 뒀다 개나 먹이게."


이 내용을 말하는 충청도 출신 개그맨의 말이 끝나자 좌중은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살짝 의아했다.

뭐여. 나만 그런겨?

당신에게 4천 원에 깎아 파느니 뒀다 개나 먹이고 만다는 상인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어. 난 별로 안 웃긴데?







광역시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부모의 문화유산은 충청도였던 나 역시 팔 할은 충청도였다.  

어디 가서 나쁜 평가 안 받고 근면 성실하게 살았지만 딱 한번 어떤 이에게 "음흉하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음흉하다고? 내가?

호불호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나보고 음흉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자리에서.

그 호불호란 것이 너에게 듣기 편한 것일 텐데 내가 너의 뜻을 맞춰주지 않았다고 음흉하다 소리를 하는 너는 얼마나 사악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엇따대고 평가질이양~)


내 입장에서는 가타부타하기 싫어 애매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이 어째서 음흉하다는 건가. 투표에도 기권이란 것이 있는데. 너의 속이 시원하도록 예스냐 노냐를 까발려줘야 할 의무가 내게 있는 것이냐고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다시 시장 이야기로 돌아가 보고 싶다.


재래시장에 가서 채소를 둘러본다. 왔던 길을 되짚어 한 가게 앞에 멈춰서 상추 따위를 쳐다보고 있다.

싱싱한지 눈으로 재차 확인한다.

저기 앞에 앉은 주인은 그런 나를 흘낏 보고는 하던 일을 하며 한마디 툭 던진다.

"그거 상추 맛있는 거여. 담배상추여."

나는 말없이 몇 초 더 쳐다보다 한 발자국 상추 앞으로 다가선다. 그걸 본 주인이 끙차. 엉덩이를 일으켜 다가온다.

"한 근에 얼마에요?"

내가 묻자 주인이 무심히 까만 봉지 한 장을 톡 뜯으며 "한 근에 사천 원."

흘깃 나를 쳐다보고 대강 상추를 덜어 봉지에 담으며 "한 근만?" 한다.

"한 둬 근 줘요."


픽 웃음이 난다. 두 근이면 두 근이지 한 둬~근은 몇 근이라는 건지 내가 말하고도 우습다. 부모의 말투가. 행동이 나온다.


주인은 말없이 상추 담은 까만 봉지를 건네고 나 역시 묵묵부답으로 돈을 준다. 소리 없이 돌아서는 우리였지만 적당한 가격에 싱싱한 채소를 산 나는 다음번에 또 올 것이고 트집 잡고 깎지 않아 좋았던 주인은 한 줌 더 집어 덤으로 주기 잘했다 싶을 것이다.


좋은 거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음흉하다는 말과 함께 차라리 욕을 하라는 말도 몇 번 들은 것 같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는데도 헤어질 수가 없다며 나를 불러 술 마시고 자기를 위로해 달라던 친구가 했던 말이다.  내가 그때 뭐라고 말했더라?


"너 저기 육교 보이지?"


"응 보여. 왜? 창식이가 육교에 있어? 나 델러와 써?"


"아니. 너님의 창식이는 지금 양다리 중이시라 바쁘시고요. 내 말 잘 들어. 내 친구야. 너는 있잖아. 지금 저렇게 멀쩡한 육교 내비두고 그 밑에 횡단보도 긋고 있는 거야. 쎄가 빠지게. 그거까지는 좋다 이거야. 너의 자유니까. 그런데 나보고 그 횡단보도에 신호등 세워달라고 하면 되겠냐. 안 되겠냐."


"아. 뭔 소리야. 창식이한테 전화나 걸어. 나 델러오라고오~"




아오... 요골고냥확그냥막아오....


흠흠... 다시 생각해보니. 여보게 친구. 그 창식이란 너의 남친과는 이제 그만 교제를 중단하는 것이 낫겠네.

양다리는 아주 나쁜 행동이지 않은가. 자네가 그 술 깨면 동시에 그 창식군에게서도 깨어나길 바라네.


모든 충청도의 실핏줄들이 나와 같은 성향일 수는 없으나 아무튼  나는.

내가 이렇게 정성 들여 빙빙빙 돌려 말하는 것은 자네와 나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뜻을 전달하기 위함 일세.

우린 애정이 없으면 이렇게 말하지도 않아. 애정이 없으면 그냥 한마디면 끝나지.


"내비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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