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어서 와 네 자리 맡아놨어.라고 말하는 중앙도서관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들어가야 하는 기분.
내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최대한 들키지 않고 태연하고도 무심하게... 어.. 그래.. 고마워... 하고 툭 앉아버려야 하는 기분.
공부하는 내내 숨소리조차 심장을 옥죄지만 가끔 아무렇지 않게 고개 들어 목운동도 하고 손깍지를 끼고 팔운동도 해보는 뻔뻔함이 필요한 기분...
언제나 중앙도서관 어디쯤 앉아있을 그 남학생을 생각하며 건물 불빛을 든든하지만 처량하게 바라보는 기분.
돌고 돌아 다시 브런치에 부스럭부스럭 필통을 열어본다...
어려서 본 영화 빠삐용은 좀 지루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1973년 작 이 영화를 끝까지 본 건 더스틴 호프만 때문이었다. 나이 먹어 다시 봐도 빠삐용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귀엽고 뭔가 엄마 말 잘 듣게 생긴 마이 보이 스타일이다. 주인공이 탈출을 성공하는 것보다 마이 보이가 그 험한 곳에서 살아남는 여정이 기특하고 궁금했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내 죄가 뭐냐고 따지는 빠삐용에게 절대자는 죄명을 말하는 부분. 뭐 너무 유명한 이야기지만 절대자는 빠삐용이 억울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건 이미 알고 있는 거고. 너의 죄는 따로 있어. 인생을 낭비했다는 거야. 그래서 대가는 죽음이고."
내가 어처구니없었던 건 빠삐용의 태도였다. 당당하게 나는 억울하다고 외치던 그가 아무 소리 못하고 얌전히 뒤돌아간다. 인생을 낭비해봐야 소중한 것도 알지 않을까요? 이제 알았잖아요. 깨닫기 전에 어떻게 낭비하지 않을 수 있나요. 깨닫기 전에 친절히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운 좋은 환경에 있지 않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놓친 뒤에야 눈물을 흘린다. 사랑의 대가는 결국 이별이라는 걸 우린 나이가 먹어가며 깨닫는다.
아....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그저 더스틴 호프만의 종종거리는 몸짓에 감탄이나 하고 말걸 그랬다. 살인에 버금가는 인생을 낭비한 죄를 저지르고 빠삐용을 대신 내세워 절대자에게 따지고 싶었다.
이 등신아. 야무지게 따져봐. 뭐. 낸들 이럴 줄 알았나요? 거 야박하지 굴지 말고 기회라는 걸 좀 내놔봐요.
난 진짜 몰랐다니까.
인생을 낭비했든 하지 않았든 결국 사람은 죽는다. 모두 죽는다.
인생을 낭비한 죄의 대가가 죽음이라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던 자의 죽음은 달콤한 휴식이란 말인가?
더 야무지게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절대자의 눈 밖에 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네. 잘못했어요. 살면서 매일매일 그 날들. 그날의 순간들, 그날의 선택들을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어요.
이게 진짜 대가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이제 그만 커트해주심 안될까요.
매서운 바람이 부는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코코넛 포대자루를 내던질 틈만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