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가 뭐든 말만 해.
사람은 가끔 자신이 뭘 잘하는지 까먹고 살 때가 있다. 너무 익숙하거나 오래되어서 굳이 꺼내 바르지 않는 립스틱처럼. 그렇게 그저 그런 색깔처럼 잊고 살 때가 많다.
노트북 앞에 앉아 내 사랑하는 자판기를 또닥거리려고 하면 어김없이 호출이 온다.
--에어컨 안 시원해~~~~
얼른 가서 온도를 내려준다.
--스탠드가 너무 밝아...
서둘러 어둡게 조절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틀어줘.. 스탠딩 에그. 친구에서 연인으로...
1시간 반복 재생을 누른다.
--아니. 소리가 너무 커
낮춘다.
--아니. 이젠 잘 안 들려..
올린다.
--침대 다시 정리해줘
달려간다.
이미 나는 아까 밤 열 시에 닭갈비를 요리했다. 정성껏 양념을 하고 맛있게 구운 다음에 모짜렐라 치즈를 듬뿍 얹어 담아주었다. 그리고 지금 밤 열두 시 십오 분.
난 입속의 혀처럼 다른 사람 수발들기를 잘한다. 원하는 것을 말하기만 하면 척척 해준다. 아. 방금 또 볼륨을 줄여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하던 작업을 하려고 했다. 쓰려고 했던 소재를 다시 들여다보니 구려 보인다. 아깐 정말 환상적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참신함이 휘발되어버렸다.
글은... 첫사랑의 손목 같다.
잡을까 말까.
망설이면 안 돼. 적당한 시간, 알맞은 분위기, 편안한 호흡이 되면 서둘러 잡아야 한다.
말캉말캉한 그 애의 손을 내 손아귀에 넣고 씨익 웃으면 그 애도 날 보고 씨익 웃는다.
내 볼일 다 보고 와서 슬며시 손을 잡으려니 뻘쭘하다. 머뭇거리다 만다.
오늘 글은 내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