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터졌다 Aug 14. 2021

만조상해원경(4)

슬며시 다시...

"푸~~ 푸우~~"


성환의 모는 커다란 대접의 물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입으로 머금었다가 여기저기 뿌려댔다. 긴박한 불이라도 끄는 듯 했지만 방안은 어린 아기를 안은 성환이 얼음처럼 서 있었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다 됐다. 암말 말거라." 

옷 앞섶이 젖은 성환의 모가 살금살금 방안으로 들어와 두 손을 모아쥐고 싹싹 비는 시늉을 했다. 


"천지신명께 고하니다. 천지신명께 고하니다. 귀한 목숨 살리시고 필요하시거든 늙은 것을..."


염불 외듯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중얼거리는 성환의 모는 비장해보였다. 그 엄숙한 모습에 성환은 더는 뭐라 말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본인도 지관 일을 봐주면서 저렇게 비는 여인네들을 많이 봐왔다. 땅의 기운을 빌어 후손에게 복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빌고 빌던 그 모습이었다. 

늘 비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는 입장이었지만 내 피붙이와 관련하여 비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 생경하기만 했다. 갑자기 성환은 내가 무어 부정 탈 일이라도 했는가 싶어 옆구리가 싸하게 한기까지 느꼈다. 


품안의 자식을 내려다 보았다. 오똑한 콧날에 갸름한 얼굴이 영락없이 자신을 빼닮은 듯했다. 또렷한 입술선은 고집이 세보이는 것이 열이 올라 축 처져있음에도 보통 성격이 아니리라 싶었다. 살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 아이가 과연 제 얼굴처럼 자라줄지, 제 성정을 닮아 까닥까닥 아비인 저에게도 대드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리된다면 얼마든지 오냐 오냐 벙싯벙싯 웃어가며 당해줄 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혼곤히 기운이 없었다. 얼굴 가득 내려앉은 수포는 빨갛게 부풀어 진물이 흐르는 것도 있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않은 아이가 감당할 질병이 아니었다. 


"..........오신듯이 가시옵고...... 이 내 손에 피를 내어 드릴테니....부디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성환 모는 그때까지 뭐라뭐라 정성껏 방 안을 돌며 빌고 다녔다. 모친의 저 말을 듣고 손님이 물러나 준다면 그야말로 모친이 내 스승이오. 은인이려니 싶어 암말 않고 무릎을 굽혀 큰 키를 줄여 최대한 공손하게 서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힌 눈을 슬며시 뜬 성환 모는 이내 두 손을 뻗어 아이를 건네 받았다.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보더니 고대로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야무지게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아이 앞에 정성껏 절을 했다. 


"오신듯이 가시옵고.....노여움을 푸시어..."


한참을 아이 앞에서 빌고 빌더니 고개를 들어 성환을 보고 나가자는 눈짓을 한다. 성환은 모친을 따라 조용히 방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바람이 훅 불어 한기가 느껴지다 오히려 시원했다. 


성환 모는 흘낏 아들을 바라봤다. 겅중하게 키가 커서인지  며칠 고생을 한 탓인지 아들의 얼굴이 더 높고 더 작아 보였다. 

"너무 속 끓이지 말어라. 잘 될 것이다. 내가 너도 칠성신께 빌어 낳았느니라. 내가 간곡히 빌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거이니. 그리고 아범 네가 업동이를 들였는데 설마 삼신께서 어쩌실까. 다 액땜한다 생각해라."


평소 그녀 답지 않게 말이 길었다. 하지만 업동이란 말에 성환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제가 한 공덕이 있을 것이다 싶었다. 속이 훅 더워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남 식구 들이고 내 식구 생겨서 잠시 액땜하는 거이니 염려말어라. 너부텀 잘 먹고 든든해야 아이도 아비 따라 젖 달라 할 것 아니냐. 그럼 에미 간다. 내일 치성 드리고 모레 올테니 그리 알어라."


어머니가 집을 떠난뒤 성환은 다시 살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누워있는 아이 곁에서 긴 다리를 채 뻗지도 못하고 오그려앉았다. 벽에 머리를 기대 아이의 병이, 손님이 차라리 제게로 옮아오기를 바라며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한참이 지나 방문이 살짝 움직였다. 출산한 지 얼마되지 않은 성환의 처였다. 혹시 병이 옮을지 모르니 절대 들어오지말라는 남편의 명을 어기고 새벽에 기어이 방문을 열고 있었다.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하고 다 부르튼 입술을 꼭 깨물고 버들버들 떨리는 다리로 방안에 들어선 성환의 처는 곧바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네가 죽으면 에미가 살겠니. 내 속에서 나왔으니 네 병도 에미에게 줘야지.'

성환의 처는 홀로 방바닥을 네 발로 기어다니며 울며 오열했었다. 자기가 무얼 잘못해 아이에게 손님이 찾아왔을까 싶어 자신을 저주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남편과 아이가 있는 방을 찾아온 것이다. 아이가 잘못되도 내 품안에 안아 지켜보고 싶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들추고 아이를 안으려 할때였다. 돌연 아이가 축 처졌던 몸을 부르르 흔들더니 두 다리를 쪽 내리뻗었다. 그리곤 주먹을 쥐고 '앙' 하고 작게 울었다. 


"오냐 오냐 내 새끼. 에미왔다. 에미왔어"


성환의 처는 눈물이 왈칵 솟으며 얼른 아이를 안아들었다. 아이는 팔다리를 바르작바르작거렸다. 안아올린 아이에게서 똥내가 났다. 엉덩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보니 아이가 똥을 싸고 있었다. 젖은 수건처럼 축 처진 아이가 몸에 힘을 줘가며 똥을 싸고 있었다. 조막만한 얼굴을 잔뜩 찡그려가며 용을 쓰고 있었다. 


성환의 처는 그 모습이 가상하여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입으로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 아이가 살려는가보다. 살려고 하나 보다 싶어 기뻐 숨이 막혔다. 힘주기를 마친 아이가 입을 오물오물거리자 얼른 앞섶을 열어 젖을 물렸다. 미약하지만 분명히 젖을 빨고 삼키기 시작했다. 

언제부턴지 성환도 벌건 눈으로 목울대를 꿀떡꿀떡 삼키며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심야식당 닭갈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