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몇 번은 비슷한 종류의 전화를 받게 된다. 엄마들의 고민은 대동소이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
이제 학교에 입학해서 즐겁게 다니던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같은 반인데 아직 어리디 어린 나이에도 괴롭히는 정도가 교묘하고 야비하여 어찌 개입을 할지 말지 조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엄마의 하소연이 이렇게 몇 줄로 요약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먹던 급식을 함부로 피해 아이의 식판에 붓는다거나 먹으라고 강요했다거나 아주 자세하게 털어놓는 사건은 내가 들어도 속상했다.
아직 10살도 안된 아이의 행동으로 보기엔 너무 치가 떨릴 정도로 분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조심스럽게 묻는 나에게 그 엄마는 아주 큰 맘먹고 용서 비슷? 하게 하고 다음엔 그러지 말거라 서로 사이좋게 놀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잡아 족칠? 것이 아니면 대강 넘어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이와 엄마가 세트로 예민한 사람들로 낙인이 찍힌다는 것이다. 아이들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초반에 선생님의 지도가 없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분명 피해를 보고도 상대도 어린 아이다 보니 딱히 처벌을 바라기도 애매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히죽히죽 웃는 그 아이가 여전히 살살 괴롭히고 있단다. 아니 오히려 이번엔 다른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같이 어울려 노는 척하면서 아이를 골탕 먹이는 것 같다고 했다. 소위 멕이는 짓?을 한단다.
내가 알고 있는 피해 아이는 유약한 아이는 아니었다. 어디 가도 눈에 띄는 똑똑한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니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던가요?"
나는 또 물었다.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어른들이 물론 도와줘야 하지만 당사자의 해석도 존중되어야 한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지만 상대 아이랑 대강 잘 지내야 다른 친구들이랑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하네요."
이게 진짜 문제였다.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보통 견고한 자신의 무리를 이용해 상대방을 휘두르려는 경향을 보인다. 어른들도 그렇지만 신기하게 어린아이들도 이런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선택이다.
물론 나는 정성껏 신중하게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아유. 다 잘될 거야. 애들 다 그렇지 뭐. 라든가 어머 내가 뭘 알아야지, 아유. 걱정되겠네. 잘되길 바라.라는 따위의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때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된 사람에게는 입에 발린 소리다. 아니 맞지. 실컷 다 들어놓고 위로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발을 빼는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상대 아이를 실컷 욕이라도 해주는 편이 낫다.
나는 내가 가진 지푸라기를 꺼내보여 주었다. 그걸 잡을지 말지는 저쪽의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네 편이라는 마음은 확실히 전달했다.
아. 내용이 길어지고 있다.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나이를 먹어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놀라게 된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많다. 상식 수준도 기막힌 사람이 많다. 대놓고 남을 모욕하고 해를 가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요즘 흔한 말로 소시오패스 아닌가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피해를 볼 때마다 부모나 주변 사람이 나를 그 상황에서 구해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자신을 상황 속에 무작정 구겨 넣어 맞추는 것도 안된다. 나만 참으면, 내가 비위 맞춰주면. 이런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
일 년 365일 날짜를 세어보고 초중고대학교 16년 정도의 세월 속에 나를 괴롭히는 저 아이는 내 인생의 며칠을 내 앞에서 알짱거릴지 아주 대에충 따져보자. 하... 쥐똥만 한 아이 아니 쥐똥만 한 날들이다.
그런 쥐똥만 한 아이에게 상처를 받는 건 좀 코미디 같아 보이네. 비겁한 쥐똥에게 머리를 수그려 맞춰줄 필요가 있나? 쥐똥만 한 날들을 위해서?
근데 그래도 괴롭히는 건 사실이지 않나 싶을 거다. 지금 분명 힘든 것도 맞고.
맞서 공격을 하지도 않으면서 내 품위를 지키고 싶다면 한 가지 작은 방법도 있다.
작은 수첩 하나와 잘 나오는 펜 하나를 지닌다.
그 아이가 괴롭히거나 불쾌한 상황을 만들 때 그 속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차분히 간단하게 메모를 한다.
두세 줄로 짧게.
상황과 내 감정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고 이것은 내게 침착함과 용기를 준다. 쓰고 나면 적어도 내가 무방비로 당하지는 않았다는 안도감도 느낀다.
적절히 고자질도 해가면서 꾸준히 건수가 있을 때마다 메모를 하면 상대방은 움츠러들게 된다.
남을 괴롭히는 행동을 메모하는 멍청이는 없을 테니까.
차곡차곡 메모를 적으며 상대가 얼마나 지질한 녀석인가를 알게 되며 적어도 내가 불쾌한 상황을 인식하고 빠져나오게 하는 힘이 된다. 세상엔 자신이 왜 힘들고 괴로운지 알지도 못하면서 착취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도 안 되는 고난이 사실은 자신을 서서히 적셔왔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상황들은 되돌릴 수 없다.
그 수첩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맘대로다. 모든 기록은 힘이 있으니까.
미지근한 물속에서 차분히 온도를 재고 메모를 하는 개구리는 너무 늦기 전에 튀어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