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은 음료수 하나 1900원.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 어느 주말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사 마시곤 갑자기 도서관에 가보고 싶어졌다.
편의점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다가온다.
이 두 학생은 정류장에 붙은 버스 노선표를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 야. 여기서 가깝네. 세 정거장밖에 안되는데?
- 맞아. 가까워. 걸어가도 15분이면 가.
- 야. 근데 창현이 이 자식이 늦으면 뭐라 할 거 아냐. 그냥 버스 타고 가자.
- 어. 근데 버스 타봐야 세 정거장인데 잘못하면 오히려 더 걸을 수 있어. 정류장 위치 애매하면.
- 그건 또 그래. 아 어쩌지. 근데 버스는 몇 번이 가나? 나 여기 처음인데.
- 글쎄. 나도 버스는 잘 안 타서 모르겠네. 아. 야. 그냥 걸어가 걸어가. 이렇게 떠들 시간에 벌써 반은 갔어. 그냥 걸어가자니까.
- 야. 그래도 지금까지 다리 아프게 서 있었던 거 아깝잖아. 저기 119번 3분 뒤 온다는데? 저거 도서관 가는 거 아냐?
- 아. 나도 모른다니까. 새끼. 그냥 걸어. 젊은 놈이.
껑충 큰 키의 두 학생을 바라보며 저절로 흐뭇했다. 아. 나도 저런 고등학생 시절이 있었는데. 그러다 119번 버스가 3분 남았다는 말에 덩달아 나도 음료수 캔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오지랖 넓게 한마디 해줬다.
- 학생. 119번 도서관 가는 거 맞아요.
해맑은 내 말에 학생 한 명은 야. 맞네. 저거 타자. 가방을 추슬렀다. 그다음 난 깜짝 놀랐다. 다른 학생 한 명이 나를 원망스럽다는 듯이 빠르게 째려봤기 때문이다. 잘못 봤다기엔 부리부리한 그 눈이 분명하게 날 노려봤다. 왜지? 친절하게 알려줬는데 왜 날 저렇게 쳐다볼까.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 그런 거 없는데?
당황한 사이 버스는 어느새 정류장 앞에 멈춰 섰고 학생 한 명이 올라탔다. 그리고 나를 째려본 남학생이 뒤를 이어 버스 계단을 밟았다. 그 뒤에 아직도 얼빠진 표정으로 서있던 나만 타면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할 참이었다. 하지만 나는 타지 않았다. 탈 수 없었다.
오히려 뒤로 주춤 물러나 아까보다 더 당황한 얼굴로 버스를 보냈다. 나를 째려본 그 학생이 무서워서 타지 않은 게 아니고, 그 학생과 같은 도서관에 간다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 학생의 째려본 눈빛처럼 분명히 봤다.
절반도 훨씬 넘게 다 닳은 운동화 뒤축과 우툴두툴 터진 뒤꿈치 부분 실밥들 말이다.
- 가난해도 돈 몇만 원이면 신고 있는 다 터진 운동화보다는 나은 신발 하나는 살 수 있을 텐데.
- 그러니까 그 돈 몇만 원이 없어서 저걸 신고 있는 거겠지.
- 훤칠한 아들내미 신발 저런 모양인걸 부모가 모를까. 아침저녁으로 들고나는 현관 앞에서...
- 보고도, 알고도 못 사주는 부모 마음은?
- 신발 뒤축 닳은 것 봤지? 얼마나 걸어야 저렇게 닳지?
- 버스비가 얼만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아낀 버스비만큼 닳았겠지.
- 친구를 설득해 세 정거장은 걸어가고 싶었을까? 그래서 아낀 버스비는 집에 갈 때 쓰려고 했을지도...
커다란 발로 성큼성큼 힘껏 내딛기만 해도 밑창이 떨어지게 생긴 운동화를 신고 조심조심 살살 걸었을지 몰라. 내가 말을 보태지 않았다면 어쩌면 세 정거장쯤은 걸어가는 데 성공했을 텐데.
학생 미안해. 내가 잘 몰랐어. 그리고 어쩌면 이 생각도 내 오지랖이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