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으로 최대한 머리를 길러보자 작정하고 기른 머리가 어깨 지나 허리에 닿을락 말락이다.
앞으로 넘기면 가슴을 지나 배꼽에 닿을 락 말락이었다.
너무 긴 것 같지만 고데기로 꼬불꼬불 말아 풀면 뭐 그럭저럭이었다.
머리숱이 매우 많아서 그 긴 머리를 풀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머리 틀어 올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 준비물은 종이테이프.
자리에 앉아 머리 잘라주세요. 하면 얼마나요? 물어본다.
그럼 보통.
그냥 다듬어 주세요-거의 자르지 말라는 말이다.
한 오 센티 정도요 - 이 스타일 그대로 유지하되 가볍게 상큼할 정도만 자르라는 말이다.
한 십 센티요. - 오늘 큰맘 먹고 나왔으니 과감하게 확 잘라달라는 말이다.
늘 긴 생머리였던 나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얼마나 자르냐는 말에 - 어깨 지나 쇄골 즈음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내 어깨와 쇄골은 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데 미용사 분에 따라 길이가 천차만별이다.
지금도 성질나는 건 어깨 지나 쇄골 즈음이요 라고 했는데 귀 밑 오 센티로 자른 분이다.
손에 쥐고 칼로 단번에 툭 끊어버려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던 기억이 있다.
(아. 그래 봐야 화는 귀 밑 오 센티까지. 부들부들..... 푸르르르..)
이번에 머리를 자를 땐 종이테이프를 가져갔다.
얼마나 자를까요 머리가 굉장히 기네요.라는 말에 대답 대신 종이테이프 쭈욱 찢어서 내 양쪽 쇄골에
길게 붙여주었다. 물론. 헤어 가운 위로.
"머리를 풀었을 때 이 종이테이프를 넘겨야 합니다. 훌쩍 넘겨야 해요."
미용실처럼 내 맘과 다른 곳이 또 있을까.
살랑살랑 봄바람 부는 베란다에 서 있는 전지현처럼 상큼하게 다듬어 주세요. 는 내 맘이지만 출력은 살랑살랑 빨래 잘 마르게 생긴 베란다에 서 있는 생활력 강해 보이는 사모님이 나온다.
아. 이건 아닌데.
물론 헤어의 완성은 얼굴이겠지. 암. 그렇고 말고. 그건 나도 아는데.
쇄골 즈음과 귀 밑 오 센티는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내 쇄골이 허공에 붙었나 싶은 거다.
나이 먹을수록 귀찮다. 뭐가. 설명하기가.. 말하기가 귀찮다. 입 한번 열기가 소모스럽다.
그래서 모든 말을 될 수 있으면 계량하기로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해보자 싶었다.
머리 길이는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물론 빵긋 웃으셨지만 난 아무렇지 않았다. 흥. 내 나이가 몇인데
이깟 주접쯤이야.... 가볍게 맞받아 웃을 수 있지.
병원 진료를 볼 때도 정확하게.
--일 년에 주량이 어느 정도이신가요?(대학병원 초진 예진에 묻는 내용이다.)
--네. 전 일 년에 정확히 막걸리 천 cc 마십니다.
--아... 천 cc요.
더 할 말이 없으니... 글도 자른다.... 이렇게요.... 툭.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