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에는 주어가 없구나.
잘 웃지 않고 사적인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나는. 그도 그럴만한 것이 아이 학교 입학 후 저학년 때 여기저기 티타임 초대도 다 거절했었다. 공손한 태도는 유지하지만 될 수 있으면 만나지 않고 싶었다. 엄마들의 모임은 어쩔 수 없이 나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재산이나 학벌정도는 크게 영향을 안 준다 쳐도 지향하는 점이나 취향 정도에 따라서라도 점점 관계가 정리되는 건 사실이다.
어쨌든 사춘기오기 전에 학원 하나라도 더 돌려서 선행 한 달이라도 해 놔야 한다는 엄마랑 공부 그거 다 부질없고 할 놈하고 유전자가 젤 중요하더라 하는 엄마랑은 절친이 될 수 없고 앞에 놓인 커피가 맛있을 리 없는 게 맞다. 길게 돌려 말했지만, 결국 나는 나 속 편하자고 친하게 지내는 엄마를 만들지 않았다.
엄숙하고 재미없는 여자, 딱 내 얘기였다.
아직도 새벽에는 여전히 수면제를 먹어 말어를 고민하고 불면에 시달리는 건 여전하지만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남향 덕분인지 낮에는 푼수짓도 곧잘 한다. 그중 하나는 강아지 관광가이드다.
집에서 키우는 말티즈 한 마리가 있는데 체중이 3킬로 정도다. 6살인 이 강아지를 오른손으로 안아 들고 집안 여기저기를 관광 나선다.
"자. 여기는 냉장고. 열어볼까. 뭐가 있나. 오늘은 불고기 할 고기와 낙지가 얼려있네. 귀요미가 좋아하는 닭가슴살도 있네. 다 여기 있지? 냉장실도 열어볼까. 우와. 치즈가 한 보따리네. 먹고 싶어? 아유 먹고 싶어? 안 되지. 이건 내꼬니까"
이번엔 책장으로 간다.
"여기도 보여줄까.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아 내 책이야. 개부럽지? 이건 너나 읽으라고? 어허. 치즈를 먹고 싶으면 표정관리를 해야 할 텐데? 홍홍홍"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강아지가 평생 쳐다볼 일 없는 높은 벽장까지 다 열어서 안을 보여준다. 신발장도 열어 보여준다.
"이 까만 구두 보여? 수제화라고 비싸게 맞췄는데 발이 아파서 못 신고 있어. 나도 어이없는 거 알아. 근데 수제화라 반품도 안된다. 그냥 돈에 내 발을 맞춰야 해. 넌 좋겠다. 신발 필요 없이 그냥 휙 나가면 땡이네?"
한참 이렇게 주접을 떨고 있는데 아이가 다가와서 불쑥 질문을 던진다.
"귀요미가 좋아해?"
"아니. 몰라. 근데 좋지 않을까. 귀요미가 나 아니면 이렇게 높은 데를 언제 구경하겠어. 맨날 바닥만 보는 걸. 거북목 생길지도 몰라."
"귀요미는 개야. 개목이지 거북목은 안 생겨."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자. 귀요마 고개를 들어 높이. "
"귀요미가 좋아하는 걸 알려면 엄마도 귀요미 눈높이로 집을 봐야지."
"뭐라고?"
"귀요미 눈높이로 고개를 숙여서 집을 바라보면 귀요미 입장이 더 잘 이해될 거 같으다고."
어. 그러네... 개를 내 눈높이로 바라보게 해 주고 내심 뿌듯해했는데 그건 내가 좋은 주인이라서 너를 이런 구경도 시켜준다라는 오만이었으려나?
개는 그저 바닥에 떨어진 개껌이 더 보고 싶었으려나?
"그리고 내 눈높이도 좀 보고."
"지금도 거의 니 눈높이거든? 너랑 나랑 키차이 10센티도 안 난다. "
"그건 그러네."
개는 천장 높은 곳을 봐서 좋을 거라는 생각,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엄마들 모임이야 뻔하고 비생산적일 거라는 오만.
양육에는 주어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