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다큐지만, 가끔은 예능을 꿈꾼다

퇴사 10일 차, 오늘의 일기

by 김시온

평범하다 못해 투명에 가까운 하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엔 유독 졸음이 쏟아진다. 애써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책을 펴보지만, 활자는 수면제일 뿐이다. 졸다 읽기를 수차례, 결국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떨궜다. "나와서 밥 먹어!"라는 어머니의 외침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녁까지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밥심으로 겨우 정신을 차리며 생각했다. 타고난 이야기꾼들은 이런 '무(無)의 시간'조차 재밌는 썰로 풀어내겠지?


오늘은 재미없는 사람이 '재미'를 분석하는 과정을 적어보려 한다. 별일 없이 흘러간 오늘 일기장에 무엇을 채울까 고민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연습이기도 하다. 지금은 TV를 멀리하지만, 한때는 <라디오 스타>나 <아는 형님> 같은 토크쇼를 즐겨 봤다. 그중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는 건 배우 서현철 님의 에피소드다. 밤샘 촬영 후 컨디션이 좋아 운전대를 잡았는데, 깜빡 졸았다는 것. 놀란 마음에 갓길에 정차된 큰 트럭 뒤에 차를 숨기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앞이 꽉 막힌 트럭 뒷면이었다고 한다. 순간 사고 직전인 줄 알고 "으아악!" 비명을 질렀다가, 상황 파악 후 쉰 목소리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다는 이야기. 그 생생한 묘사에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나의 하루엔 그런 드라마틱한 반전이 없다. 설령 서현철 님과 같은 상황을 겪었다 한들, 그렇게 맛깔나게 살려낼 재주가 내겐 부족하다. 연기가 가미된 스토리텔링은 고사하고, 글로 웃음을 주는 건 더더욱 고차원의 영역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필력 미쳤다"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는 글들이 있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댓글창을 열어 분석해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가.


첫째, 생생한 표현력이다. 단순히 "맛있었다", "추웠다"로는 부족하다. "동사 직전의 날씨였는데, 친구가 시켜 놓은 김치찌개 국물을 한 숟갈 뜨니 얼어붙은 몸이 슬라임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정도는 되어야 한다. 때로는 다소 경박하고 자극적인 표현이 날것의 웃음을 주기도 한다. 점잖은 척해서는 터뜨릴 수 없는, 날카로운 묘사의 힘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올라오는 커뮤니티 글에는 비속어가 잔뜩 들어가 있지만 그런 매운맛이 대부분 재밌다.)


둘째, 허당 모먼트다. 완벽한 사람은 멋있지만, 웃기진 않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저지르는 인간적인 실수가 공감을 부른다. 서현철 님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건, '컨디션이 좋았다'는 자신감이 '트럭 뒤의 비명'이라는 찌질한(?) 결말을 맺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낼 때 독자는 무장 해제된다.


셋째, 반전, 즉 '꺾기'다. 'A 했기 때문에 B가 되었다'는 뻔하다. 'A 했기 때문에... K가 되었다'라고 튀어야 터진다. 실제로 나에게도 꽤 타율이 좋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최근 이야기인데,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던 시절, 일요일 오전마다 광고주 보고를 하느라 예배를 못 드렸다. 결국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제발 주일 오전에 온전히 예배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셨다. 다만 방법이 조금 파격적이었다. 상황을 정리해 주신 게 아니라, 나를 회사에서 정리해 '퇴사'를 시켜주신 것이다. 덕분에 나는 매주 아주 여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할렐루야?)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예상이 빗나간 지점에서 오는 쾌감이다.


글로 웃긴다는 건 참 어렵다. 말에는 표정과 억양이라는 조미료를 칠 수 있지만, 글은 오직 문장으로만 승부해야 하니까. 내게 유머란 마치 '춤'과 같다. 머리로는 스텝을 아는데, 몸은 뚝딱거리는 몸치처럼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어릴 땐 어떻게든 웃겨보겠다고 무리수를 던지다 이불 킥을 하곤 했다. 이제는 그 강박에선 벗어났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욕심이 남는다. "저 사람 참 재밌네"라는 말을 듣고 싶은, 유쾌한 사람에 대한 갈망이. 오늘처럼 아무 일 없는 날에도 누군가를 피식 웃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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