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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May 21. 2024

매트리스 커버

#8/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그대 아닌 다른 사람은 이 자리를 허락할 수 없어. 

당신이 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늘 힘겹게 숨 쉬고 있단 말이야."






 내가 이 집에 처음 들어오고 나서 줄곧 내 위로 매트 하나가 더 깔려있다. 이 매트는 세탁할 때 빼고는 항상 내 위에 있다. 숨이 턱 막혀 갑갑함을 호소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숨 쉬는 방법을 매트 때문에 터득했다. '강하게 자란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표본이 나다. 사람은 코로 숨을 쉬고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쉰다. 나는 물고기와 비슷하게 양 옆으로 숨을 쉰다.

 

 이봐 주인님. 잠은 잘 와? 내가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나서 당신이 원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만 매트와 이불에 깔려서 별로 티는 안나. 마치 밖에서는 잘 안 보이는 자동차 시트 같은 느낌이랄까?

맨날 밑에 깔려있기나 한 내가 숨도 힘겹게 쉬고 있으니까 가끔은 베란다에서 한 번 털어줘. 그 때라도 숨 좀 편하게 쉬어보자. 뭐... 그냥 그렇다고... 불평이라기보다는... 아냐, 아무것도 아냐. 편하게 자기나 해 내가 항상 밑에서 받쳐줄 테니까.


 가끔 이불과 베개가 혼잣말로 "만족한다", "불만족한다"하며 서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는데 가소롭다. 진정한 불만족을 아는지. 나도 똑같이 들어왔는데 나만 차별하나 했지만 이제는 당연하게도 받아들인다. 나는 만족하지도, 불만족하지도 않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여름만 되면 코가 막혀 숨 쉬기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침대에서 자는 방 주인도 그중 하나다. 여름만 되면 코가 막혀서 숨을 잘 못 쉬는 바람에 새벽에 깨기도 하고 다음 날 굉장한 피로감에 휩싸여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왔다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언제는 회사사람들 3명한테 많이 피곤해 보인다고 같은 날에 연속으로 들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그날 그렇게 피곤하진 않았다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피곤해져야 하나 고민이 됐을 정도라고 한다. 항상 얼굴에 피곤을 달고 사니 피곤해도 피곤하다고 정확히 못 느끼고 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어찌 됐든 나도 숨 쉬기 불편했다가 이제야 터득했다. 여전히 불편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깨달으며 사니 즐겁고 감사하다.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늦게 될 것도 빠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존이 걸린 문제면 감사와는 별개로 반드시 터득해야 할 수밖에 없지만 오래 살아온 다른 모든 물건들의 말을 들어보면 감사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들의 말이 어릴 땐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도 이제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그러나 감사를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가령, 나랑 같이 온 베개랑 이불로 예를 들어도 좋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닐 수 있음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빠른 인터넷과 모두가 갖고 있는 스마트폰, 어디든 갈 수 있는 대중교통, 그 외에 도심지역에 살면 누릴 수 있는 인프라들이 있는데 동남아시아의 낙후된 지역에 가보면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아냐고? 이 집은 TV를 보면 뉴스 아니면 해외 다큐만 본다. 가끔 드라마도 보는데 이 침대 주인은 그런 건 관심 없지만 가끔 그의 가족들이 거실에서 크게 틀어놓은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잘 들린다. 아무튼 드라마도 스릴러고 이 현실 세상도 스릴러다. 그러니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런 의미로 베개와 이불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참 배부른 소리만 늘어놓는 침구류 같으니라고."


 나는 감사를 조금 배웠지만 아직까지는 불만을 더 늘어놓고는 한다. 세상이 불공평해서 같은 행동을 보고 때때로 관대하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화낼 땐 불같이 화내기도 한다. 내게 유익이 없고 손해만 있다면 목숨까지 내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참을 수는 없다.

 나는 만족을 모르지만 불만족도 모른다. 그저 태어났으니 살고 있다. 다만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나에게 어른이라고 말하는 누군가는 나의 한 면만 보고 서툴게 판단한 거다. 어른이 되고 싶은 청년정도로 해두자.


 누군가 나에게 불쌍한 인생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럴 땐 무시하던가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게 이 불공평한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바보의 말은 반박할게 아니라 맞다고 인정해 주며 누군가 공격적이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게 나중에 뒤돌아보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려워도 조금씩 배워가보자. 여전히 화가 나고 억울할 때가 있지만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망치로 두드려서 만드는 멋있는 칼처럼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며 단단하게 삶을 단련시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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