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온 May 22. 2024

스탠드

#9/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만들어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난 항상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살고 있다. 나는 빛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갈래로 굴절시켜 빛의 파장이 오색 빛깔의 프리즘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나를 수식하는 말들이 무색하게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나를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때 소품으로 사용했다. 내가 밝은 빛을 낼 때 그의 눈은 영롱하게 반짝였다. 여전히 내가 일을 할 때는 만족스러운 눈빛과 함께 미소를 보였다. 방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으나 가구랑은 어울렸고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틈틈이 도움을 줬다. 


 그의 방에 분위기가 필요할 때 나를 켜두곤 했는데 값비싼 보석처럼 수십 개의 각을 가진 투명한 크리스탈 모양의 구슬 여러 개가 줄 지어 매달려있고 사극에서나 보던 창의 끝부분처럼 뾰족한 크리스탈, 그리고 얇은 동전 모양 크리스탈까지 3가지 장식물들이 그 조화를 이루며 매달려 있으니 이들에게 빛을 내는 필라멘트는 단순한 필라멘트가 아니게 된다. 


 먼지 쌓인 나는 어느 순간 그의 관심 밖으로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가 침대에서 빛이 필요로 할 때 침대 헤드에 내장되어 있는 조명을 사용하거나 거기에 올려둔 리모컨을 조작해 다른 무드등을 사용한다. 그에 반해 나는 직접 손을 대야 하니 감성을 잊은 그에게는 내가 1년에 몇 번 사용되지 않는다. 걔들과는 다르게 난 엄청 민감하다. 아주 살짝 손가락만 갖다 대도 켜진다. 3번까지 점진적으로 강하고 밝은 불빛을 뿜어낼 수 있는데 한 번은 그가 청소를 하다가 나를 살짝 건드렸다. 불빛이 켜지고 그는 "아 뭐야"하며 귀찮음과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시 두 번을 터치해 나를 껐다. 내 삶에 가장 충격적인 일 세 가지를 꼽으라면 이 순간을 제일 첫 번째로 꼽겠다.

 늘 옆에 있던 사람에게로부터 들려오는 미움 섞인 목소리와 감정은 나를 깊은 바닷속으로 끌어내렸다. 어디가 끝인지 모른 채, 올라가는 거품과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화려한 무대로부터 내려오면 무대 위에서 들려오던 함성과는 다르게 소셜미디어에서 그를 싫어하는 안티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흔히 '스타'라고 불리는 반짝이는 그들의 삶의 이면에는 아무도 모르는 어두움이 있는데 내 삶도 이에 빚대로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물이 그 존재의 이유에 맞게 살아가야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어느 순간 소식이 잠잠해지고 새로운 라이징 스타는 해마다 떠오른다. 

 공급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사물들이 존재의 이유에 맞게 탄생하지만 이유를 찾지도 못한 채 부서져 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말로를 따라가는 중일까.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떠날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 오직 사람의 온기에 의해 나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될 수 있는데 그 온기를 마지막을 느낀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빛이 없는 곳에 빛이 생긴다면 그 한 줄기 빛은 희망을 자아낸다. 매일을 어두움 속에 살아가는 이에게 따뜻한 빛이 되어주고 싶다. 도움을 주며 살아간다는 것. 내가 필요한 곳에 온기를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 넉넉한 부요함을 뜻한다. 난 그런 사물로 수명을 다하고 싶다. 어디에서 보든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기에 그에 걸맞은 내면의 아름다움도 갖고 싶다. 그가 제일 어두운 새벽에 불을 밝혀 좋은 책을 읽을 때 함께 읽고 성장하고 싶다. 글자의 획 사이를 나의 빛으로 채워서 그 형태가 온전히 드러나 책을 읽는 독자의 눈에,

그리고 머리에, 마음에 새겨지길 원한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그렇게 밖에 안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어떻게 다른 형태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내 존재의 이유에 충실하지 않아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옷이나 가방을 만들 듯이 

글감을 찾아 헤매는 어느 누군가에게 내 쓰임새와 다르게 글을 쓰는데 영감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평화로운 저녁, 평소 듣던 가사 없는 음악과 함께 그가 나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노트북 자판을 누른다. 화면에는 글자가 적히더니 한 문장, 한 문장이 모여 한 문단이 되고 끝내 한 편의 글이 된다. 

 글을 쓴다는 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일이다. 글쓴이가 알고 있는 단어에 따라 창조의 세계의 크기가 정해진다. 창조의 세계에 한몫을 보탠다면 나는 빛을 뿜어 아름다움을 내기도 하지만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멋있고 훌륭한 일을 하기도 한 것이니 그것으로 위안과 만족을 얻는다.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 오늘은 나에 대해 써줄 수 있으십니까? 당신의 어둠에 밝은 빛을 비춰주고 싶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깊은 위로가 되는 날이길 바랍니다.



이전 09화 매트리스 커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