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온 May 28. 2024

암막커튼

#10/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수라 백작을 아는가? 반은 남자 반은 여자인 사람, 나는 아수라 백작이다. 

앞면은 한낮의 태양을 막아내는 깊은 어둠이고, 

뒷면은 밤의 고요를 따스하게 감싸안는 부드러운 빛이다.

사람들은 나를 암막커튼이라고 부른다.




 주말이면 평소보다 나는 더 펴져 있다. 평소 구김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접어서 제 역할을 못하게 하는 이 방 주인이 혹여라도 늦게 일어날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조금의 빛은 새어 들어오게 해 놨다.

맨날 미라클모닝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빛도 없는 새벽에 일어나면서 보험은 잘 들어둔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는 대신 주말에는 온갖 늦장을 다 부리며 일어나서 밥을 먹고 다시 누워서 주야장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곤 하는 그를 보자니 인간적인 모습에 피식 웃기도 한다. 


 여유로운 주말, 오후 느지막이 해 질 녘에는 태양이 주황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내가 있는 방으로 자신의 빛을 쏘아댄다. 주말 오후에 살짝 걷혀있는 나는 온전히 빛을 막아내지 못한다. 방 주인이 잠에서 깨고 나서 바깥이 밝은지 확인하느라 걷어본 이후로 다시 펴놓지 않기 때문이다. 

새어 들어온 빛은 창문 맞은편에 있는 거울을 향해 반사되고 어둠에 가까운 내 한쪽 면에 주황색 옷을 입히곤 하는데 옷을 바꿔 입은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은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스타일의 옷을 입으면 멋있는 옷이어도 어색해하지 않은가? 나도 그렇다. 여기에 이렇게 산 지 오래됐지만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래도 이상하진 않은 것 같다.  

태양빛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내 모습을 본 방 주인은 멋있는 걸 본듯한 눈빛으로 씩 웃곤 하는데 비웃는 느낌은 아니다. 마치 여자친구가 남자친구한테 멋있는 옷을 사 입히고 뿌듯해하는 모습이랄까?


 옛날에는 무작정 싫어했다.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서양을 배척하기 바라며 척화비를 세웠던 흥선대원군처럼 기존의 내 모습에서 변화되기 싫었다. 난 생긴 대로 사는 게 좋다. 변화는 귀찮은 거니까. 

그런데 나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랑의 정의를 내리자면 싫어하는 걸 좋아하게 만드는 게 사랑이지 않을까. 

전부터 사랑을 받긴 했지만 이번에 내가 느낀 사랑은 조금 다른 사랑이었다. 원래의 용도에 맞게 쓰이지 못한다면 누가 그 물건을 쓸까?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주고 채용했는데 월급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할까? 나는 내가 다른 옷을 입었을 때 내 쓸모가 다 한 줄 알았다. 

빛이 나를 통과할 수 없는데 마치 나를 통과한 것처럼 느껴졌으니 착각할 만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빛이 통과한 게 아니라 반사된 거라고 보면 된다. 하얀 스크린에 빔 프로젝트를 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강력해 보이기 때문에 스스로 아수라 백작이라 부르지만 사실 내 모습이 아수라 백작처럼 악해 보이거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은 아니기에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다.

여러모로 제 역할을 톡톡히 잘해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지. 사람은 백인, 황인, 흑인으로 나뉘지만 나는 이보다는 훨씬 다양한 색으로 있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

당장 이 방 주인만 봐도 그렇다. 밝은 색을 좋아하는데 그중 노란색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면 게임 닉네임을 YMP로 지을까. 대충 감이 오는가? 맞다. 

Y는 Yellow(노란색)을 뜻하고 M은 Mint(민트), P는 Purple(보라색)을 뜻한다. 하지만 차마 노란색으로 할 수는 없었는지 베이지색으로 타협을 했다. 나중에 그의 속마음을 들어보니 방의 통일된 인테리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한다. 베이지도 침대 프레임이랑 맞아서 다행히 예뻐 보였다. 뿐만 아니라 방 문과 색이 같았고 테이블과 책장은 어두운 나무색이었다. 침대는 짙은 초록인데 노란색보다는 무난하고

잘 어울리게 베이지가 깔끔했다. 그도 충분히 만족해했다. 


 가끔 난 맞은편 아파트에 나와 같은 커튼들과 인사를 한다. 나도 성격이 꽤나 밝은 편이라서 아침에 그가 환기를 한다고 나를 치고는 창문을 여는데 그때 한 번씩 인사를 건네고는 한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인사해 주는 누군가 있긴 하지만 자주 보이진 않는다. 아주 멀리 떨어져서 같은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지방 친구 같은 느낌이다. 가까이에 살지만 먼 이 느낌이 외로움을 자아낸다. 

사랑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방 주인으로부터 느꼈을 때 난 비로소 하나의 껍질을 깨어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됐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나에게 인사를 건네어오는 커튼들에게는 감사한 마음으로 더 반갑게 인사하려고 한다. 



이전 10화 스탠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