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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May 15. 2024

이불

#7/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추운 겨울날 곧 다시 오겠다고 웃으면서 떨어진 나뭇잎은 

초록빛을 내며 마침내 그 약속을 지켜냈다.




 따뜻해진 봄이 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추워서 나와 동거하고 있는 그는 마치 내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며 쩔쩔매는 드라마 속 철부지 주인공 같았다. 


 그를 처음 만난 날도 겨울이었다. 앞서 베개가 얘기했겠지만 나와 베개와 매트리스 커버는 같은 곳에서 태어나 이 집에 추운 겨울날 들어왔다.

 내가 예민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감각이 뛰어나다. 처음 그를 본 날로 돌아가 얘기하자면 나와 같이 지낼 그를 보자마자 신체 사이즈 하며 생김새를 통해 성격이 어떤지도 대충 보였다. 

 그는 177cm의 남성이다. 며칠간 지켜본 그의 특징은 꼭 발부터 목까지 이불을 덮는다. 자면서 자꾸 발을 꼼지락꼼지락 대는 게 아마도 수족냉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발을 유독 시려했다. 나는 그에게 딱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좀 더 여유로운 길이였으면 좋겠다고 느끼는지 발끝과 손으로 나를 끝까지 잡아당긴다. 마치 인간이 입에 넣은 치즈를 쭉 늘리듯이 말이다. 

 베개와 매트리스커버 그리고 나까지 한 세트인데 왠지 내가 제일 고통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를 포근하게 해주긴 하지만 베개와 다르게 그에게 100% 만족을 주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분명 스판도 아니고 고무줄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이 아니어도 아픈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겉으로는 따뜻한 이불인데 아프게 쭉 잡아당길 때마다 속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나도 모르게 드러내고 싶을 때가 종종 생긴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겪어본 사람들은 알 거다. 내가 사람 위에 올라가서 머리까지 덮으면 누구든 숨 쉬기 힘들어서 답답함을 느낀다. 사람으로 치면 잘 훈련된 레슬러로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나 또한 그가 사랑하는 다크그린이니까, 평소에는 부드럽고 포근하니까 날 좋아하긴 한다. 

한 번은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이 이불 너무 좋다. 완전 보들보들해" 


 내심 기분은 좋았다. 이 집에 단 한 명이라도 만족하면 됐다. 

적어도 그의 어머니에게는 아주 넉넉한 이불이 될 수 있다. 


 가끔은 내가 그의 어머니 덕분에 침대 밖을 벗어나 거실까지 짧은 여행을 갈 때가 있다. 방 문을 넘어가면 화장실도 보이고 현관도 보이고 부엌도 보인다. 테라스가 보이는 거실은 내가 사는 방 보다 훨씬 밝고 넓다. 방 밖에만 나가도 이렇게 넓은데 저 창문 너머의 세상은 또 얼마나 넓을까?

알라딘의 마법의 양탄자가 부럽다. 나 같은 이불이 난다는 건 실재하지 않는 판타지지만 어쨌든 부럽다. 

 소파 맞은편에 스탠드형 거울이 있다. 거울에 비친 내가 보였다. 청록색의 소파 위에서도 곧 잘 어울렸다. 나는 딱 이 정도로 만족을 해야만 한다. 난 싱글용 이불이지만 나를 덮는 사람의 키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그들이 느끼는 만족감이 다르다. 그래서 싱글이고 싶지 않다. 베개가 나에게 궁금해하던데 누군가 지금 쓰임의 수준에 만족하냐고 질문한다면 100% 만족은 못한다고 답한다. 좀 더 커서 이왕이면 두 명은 여유롭게 덮어줄 수 있어야 더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베개는 현재의 삶에 꽤나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다. 같은 곳에서 태어났지만 엄연히 생김새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쓰임새도 다르다. 내가 베개보다 큰데 이런 내가 베개한테 질투 나는 게 꽤나 열받는다. 괜한 자격지심을 느낀다.

 내 이런 고민을 베개가 모르는지 가끔 키득키득 웃어대는 꼴이 괜히 열받는다. 혼자만 온전한 사랑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이불인 나로서 기가 찬다.

매트리스 커버는 같이 와놓고 한 마디를 안 한다. 한 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말하다 보니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다른 놈들보다 화가 많은 편이다. 사람들은 화를 다스리기 위해 감정에 대한 책을 읽는다던가 재밌는 유튜브 영상을 본다던가 친구들을 만나던가 한다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음에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가 책이나 읽어줬으면 좋겠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듣는 건 자신 있다. 늘 나를 덮고 자는 그의 목소리는 주변에서 칭찬받는 좋은 목소리니까 그리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에게 책을 읽어준다면 마음을 좀 풀어볼 의향도 있다. 어차피 같이 사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아니 왜 그런 거 있잖은가. 화가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던가 읽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 말이다. 혹은 노래도 좋다. 어둡지만 잔잔한데 희망이 되는 한 줄기 빛 같은 음악이 듣고 싶다. 내 피부색처럼 어둡지만 따뜻한, 그런 느낌을 받아보고 싶다. 유독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게 점점 그를 닮아가는 건가 싶다.


 생각의 흐름은 나를 땅 속으로 끌고 들어가다가도 다시 위로 있는 힘껏 당기기도 했다. 어쩌면 베개보다 내가 그와 더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베개보다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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