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하나?
탄자니아, 세이셸 여행
여행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고 다른 인생을 수월하게 경험할 수 있다.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보호구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 중 하나인 호모 하빌리스
공간의 변화는 우리를 일상에서 쉽게 벗어나게 해 준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삶을 만나게 해 준다. 탄자니아에서 만났던 사파리 가이드, 오동통하지만 탄탄한 몸매의 오니스모, 그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겠는가. 그의 야생에서 막 온듯한 눈 흰자위 주변이 붉은 눈매, 늘 동물을 찾아 헤매던 눈길, 그 짙은 몇 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되었을 법한 짙은 피부빛.
나는 종종 이런 어리석은 느낌을 가진다. 그들의 삶은 왠지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는 지속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의아한 느낌. 내가 이 공간에서 사라져도 과연 저 사람은 존재할까? 우리는 너무 스스로의 세상에 익숙해져서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없어지면 저 사람도 이 공간도 같이 사라지지 않을까?
내가 없어지면 저 사람도 없어지지 않을까. 당연히 아니다. 내가 없어져도 오늘도 오니스모 Onesmo는 사파리 관광객들에게 적당한 수준에서 계속 사기를 쳐 가면서 200달러든 몇십 달러든 얻어 내려고 할 것이고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들어갈 때 차량 입장료가 필요하다고 200달러가 든다고 말했다. 이미 그런 건 없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그건 못준다고 거절했다.), 팁을 주면 감사하다고 말하는 대신 얼마냐고 먼저 따지고 물을 것이고(투어를 마치고 고심 끝에 넉넉하지 않지만 팁을 주었을 때 첫마디가 그거였다. how much? 500 dollar?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다. you wish.)
길거리에서 초식 동물을 볼 때마다 저건 오늘 점심 바비큐 감이다라는 들을 때마다 피식 웃게 되는 사파리 농담을 하고 다닐 것이다. 근데도 나는 내가 사라지면 저들도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알면서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이 공간을 떠나고 난 후에 다른 관광객과 똑같이 저러고 있을 거란 생각이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현재라는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위 사진은 진흙탕에 빠진 동료의 차를 구출하기 위해 모인 다른 사파리 투어 차량, 오니스모는 탄자니아 오지랖이라 아예 빠진 차까지 대신 운전해서 빼왔다. 아래 암사자한테는 좀 미안하다. 누워서 자고 있는데 오니스모가 차를 몰고 가서 바로 옆에 댔다. 대략 대여섯 대의 다른 차들은 길가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우리 차까지 포함해서 딱 2대만 나무 옆까지 차를 댔다. 나올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쨌든 인생은 위 사진의 세이셸 날씨처럼 오리무중이다. 저 멀리서 안개가 몰려오는 것이 모이고 이내 앞이 허옇게 된다. 마치 남극의 화이트 아웃처럼 말이다. 하지만 뭐든지 경험치를 많이 쌓으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중심적인 시야를 벗어나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비행기를 타든 자전거를 타든 몇 시간의 이동시간을 거치는 동안 말이다. 이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혜택 중 하나이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혜택이며 여행하는 동안 느끼는 해방감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