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함이 부추기는 선함

악은 선을 탄생시키는 것인가

by ksoo


악인을 물리치기 위해서 영웅이 등장한다. 그리고 물리친다. 그렇다면 그는 영원한 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 그 선이 부패하여 새로운 악인이 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소설에서도 엄석대라는 악의 상징을 잡기 위해서 한 교사가 등장했고 그리고 영웅이 되었다. 근데 왜 제목이 일그러진 영웅인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그 교사는 다소 타락해 있는 것 같은 장면이 잠시 나온다.


선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면? 그저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온 도구적인 것이라면 참 맥 빠지는 일이다.


예전에 불교에 흔히 나오는 신적인 존재인 문수보살이 저 산 중턱에서 똥을 담아다가 아래 동네 사람들을 향해서 던지고 있었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위악적인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나가던 다른 보살이 그 문수보살의 현현을 보고 문수보살님이시지 않냐고 하자 들켰음을 알자 '보살님 때문에 일을 다 그르쳤다'며 산 중턱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더라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위악적인 행동들은 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인가? 위악적인 행동의 표본은 불교 이야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여러 큰스님의 기인 같은 행동들 등. 처녀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가지를 않나.. 굳이 그런 행동을 하다가 동네 사람들한테 잡혀서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드려 맞기도 하는 등… 그러다가 누군가가 말리니 말리는 사람한테 역정을 내었다는 이야기는 위의 문수보살 이야기와 비슷하다. 선을 부추기기 위한 의도된 악의적 행동이었을까? 혹은 도를 닦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 일상에서 악인의 역할을 하는 것들은 뭘까? 직장 상사? 열악한 환경? 고된 업무? 그래서 우리는 상상한다. 이 망할 지겨운 밥벌이를 벗어나고 싶다. 이 악한 속물적인 세상에서 나를 구해줄 것은 돈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급기야는 파이어족도 생겼다. 그래서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희한한 게 은퇴 후 생각보다 행복지수가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미세하게 낮을 정도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의미가 있는 연구 결과인 것 같다. 만악의 근원인 밥벌이를 벗어났는데 은퇴라는 영웅을 만났는데 행복해지지 않는다니. 좌절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생각을 달리해 본다.


나를 옭아매고 나를 불행하게 했던 만악의 근원인 것 같은 이 밥벌이가 사실은 나의 부지런함을 일깨워 나를 깨어 있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인간은 선을 유지하기 위해 영원히 없는 악이라도 만들어서 싸워가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뭔가 불합리한 시스템 같긴 하지만 할 일이 없어지면 인간은 새로운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게으름, 무료함, 막연함, 활기 없음.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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