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 1

이 불행의 시작은 언제이고 그 끝은 언제였을까요?

by ksoo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잘 지내고 있었다. 이제는 직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가정도 안정을 찾았다. 와이프와 싸우지도 잘 않는다. 우린 사이좋은 남매처럼 혹은 다 받아주는 응석받이 애를 키우는 엄마와 응석받이 아들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끼리만이라는 찝찝함이 늘 존재하긴 했다. 우리 외의 손님은 없다. 암튼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요임금 순임금의 요순시절처럼 태평성대한 삶을 보내고 있다. 전쟁이 물러나고 한동안 평화가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 또 이번에 교통사고가 왜 났을까? 물론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그전부터 시작된 불운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 달라진다. 또 그 이전의 보이스 피싱도 있고 심지어 그 사이의 소송사건도 있다. 내 인생은 전반적으로는 평온하지만 이런 일들이 슬슬 일상을 흔들고 있다. 2년 정도 사이에 말이다. 이젠 일상에는 확실히 균열이 가고 변형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과는 삶이 좀 다르게 보인다. 인생은 위험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위험하지 않은 인생이 더 위험하다는 말 등이 와닿는다.



악의 없는 피해


보이스 피싱을 하는 자들은 나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 그저 나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아버지에게 문자가 갔다. 보이스 피싱 문자가. 아버지는 대응을 하지 못했고 결국 300만 원을 입금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생기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걸 어떡하나.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생각이 났다.


어디선가 이런 범죄 기사를 본 것이. 보이스 피싱을 사주하는 그런 보복 범죄도 일어난다고 말이다. 물론 나에게 그럴만한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나. 없다. 나는 평범하게 사는 사람일 뿐이다. 그저 평범한 직장을 가지고 평범하게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그런 중년 말이다. 나한테 누가 그런 원한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날마다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것이 초현실적인 존재이건. 혹은 실제로 주변에 있는 존재인건 말이다.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가. 진짜로 지난번 소송에서 이겼다고 안심한 그 순간. 사실 안도하긴 했지만 뭔가 또 이기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또 암살자 같은 이 끝나지 않은 건이 다시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진짜 며칠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할머니, 제가 진입을 하려고 하는데 멈춰주셨어야죠.


아니 아저씨는 거길 왜 끼어들어요?


서로 자기주장을 했다. 곧 차들이 뒤죽박죽이 되고 경찰도 도착을 했다. 차를 빼라고 하고 보험으로 종결이 될 걸로 알았다. 하지만 차가 부딪힌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또... 이런 불운이 결국 또, 가시지를 않는구나. 아 이젠 힘들다... 멘탈이 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선 살기가 힘들겠구나. 사람들이 이런 사건들이 이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우리는 삶에서 뭔가 터지면 그 이유를 찾게 된다. 그게 우연히 지나가는 친구였건 혹은 스치는 바람이었건 간에 상관없이 뭔가를 잡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해도 어떤 이유를 잡은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그 사실에 안착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났다. 매우 불쾌하면서도 또한 패배감 같은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이제는 예전처럼 희희낙락하면 안 되겠구나.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바깥은 이 도시의 흔한 회색빛 안개가 깔려 있고 이 집의 유일한 장점이 탁 트인 뷰는 오히려 이럴 땐 우울감을 몰고 온다. 거의 비가 내리려고 하는 풍광이다. 거리엔 차들이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고 나는 이제 순수의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을 한다.


순수의 시대에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호한 고난은 없었다. 내가 자초했거나 충분히 원인을 알만한 일들, 세상과의 충돌로 빚어지는 갈등, 고통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 없는 사건들이다. 갑자기 보이스피싱이 닥치고, 소송이 걸리고, 고의 충돌 사건에 내 잘못도 있다지만 교통사고까지. 마치 있어야 할 고통들이 없는 너의 삶에 누군가가 너의 삶을 완성시켜 주겠다며 양념 한 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며 이리저리 휘젓고 굴려보는 것 같았다. 그 양념 한 방울이 들어가자 갑자기 색이 확 변하는 것처럼. 내 삶도 잿빛으로 변하는 것 같다.


교통사고 조사차 경찰관을 만났다. 그 할머니가 이유 없이 사소한 사고로 신고를 했다. 불운이 질척거린다. 눈이 땡그랗고 젊어 보이는 얼굴. 이름표가 보였다. 김.동.근.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평생 경찰서를 와본 적 없으니. 우리나라 경찰은 동네북처럼 치이고 해서 오히려 불쌍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공감은 조사가 마칠 때쯤 다 깨졌다.


"사고가 좀 사소한데 왜 신고를 한지 모르겠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사고가 났으니까 경찰에 신고를 하죠."

"사고 났다고 다 신고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아니라는 식이다. 상대방이 연로하셔서 잘 못 보셨다고 하자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고 등등 날 선 반응이 한 둘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가해자 피해자를 어떻게 가리냐는 질문에 마치 말귀 못 알아듣는 어린애들 만나서 힘들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드디어 내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왜 화를 내시면서 설명을 하고 그러세요? 이 상황이 처음이니 물어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니,.. 잠깐만요. 화를 냈다고요? 그렇다면 일단 죄송해요!"(당당하고 큰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화를 내면서 한다. 일단 사과는 해야 민원은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린 듯하다. 결국은 거의 내쫓기다시피 해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나가시라고요. 끝났으니까.라는 고함치는 막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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