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 4

두 세계의 충돌 - 모두에게 끝없는 고통

by ksoo

갑자기 전화가 왔다. 와이프다. 사고가 났단다. 아.... 또 왜


현장에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뭔가 어색한 풍경이다. 상대방 운전자가 매우 어려 보이고 나한테 꾸벅 인사를 한다. 원래 교통사고 당사자끼리는 경계하는 건데. 갑자기 조폭도 아니고. 이에 걸맞게 나는 깡패 같은 척을 해야 하나? 신사적인 어른인 척해야 하나? 최소한 지질하게 굴지는 못하겠다. 알아서 저 쪽에서 저렇게 예의 바르게 나오니 말이다. 학생은 매우 어린데 차는 아우디다. 부조화스럽다. 일단 보험을 부르고 마무리를 했다.


집에 와서 블랙박스를 보니 뭔가 이상하다. 수십 번 돌려보니 차가 두 번 부딪히는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딪히기 전에 차량이 급가속을 해서 들이받는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이때부터 시작됐다. 일단 보험회사에 이런 사실을 알렸다. 분명히 이건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라 상대방의 고의 과실이다. 두 번 충돌을 하지 않느냐 등등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학생은 무려 고3이었다. 고3도 생일 지나면 면허증 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보험회사는 우리한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사고처리가 빨리 끝나길 바랄 뿐. 회사 차원에서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는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빨리 마무리하고 퇴근하기만 바랄 뿐. 그러는 동안 합의를 빨리 해주지 않자 그 고등학생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한방병원에 갔다는 거다. 벌써 치료비가 32만 원. 게다가 우리 보험회사에서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서 외제차 준비금?에서 이미 200만 원을 지급해 버렸다.


할 수 없이 경찰에 신고했다. 아 하지만 경찰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그동안 보험회사와 상의한 건으로 고의 사고가 의심된다고 했더니 그건 그 보험사쪽 주장이 아니냐는 거다. 조사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찰 친구도 있어서 항상 응원했는데 본분에 전혀 충실하지 않은 태도에 현타가 왔다. 다시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그 고등학생이랑 통화를 해보겠다. 나는 소용없을 거라고 했지만 와이프가 고집을 부렸다. 전화번호를 허락을 받고 달라.


전화번호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거 고의 사고 아닌가요?


아닌데요. 사모님도 주변 안 둘러보셨잖아요.


이거 이렇게 하다가 아직 젊은데 큰일 나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구 사투리다. 아마도 금방 대구에서 올라온 느낌이다. 원정 온 건가)


아니 도대체 그동안 몇 번을 사고가 난 거예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처음은 아니죠?


네, 그런데요?


지금 확인해 보니 보험 자체가 2달짜리 보험이라고 하던데, 2달도 안 됐는데 사고가 난 거죠?


네, 그런데요?


몇 번이나 났는데요?


많이 났어요? 왜요?


(아직 어려서 그런가 화가 나서 그런가 술술 분다.)


근데 왜 보험료 지불에 동의를 안 해주는데요? 사장님도 동의하시고 보험료 받으시면 되잖아요.


그러려고 보험 든 거잖아요.


(이젠 와이프를 설득하려고 든다. 공범이 되자. 도대체 왜 까다롭게 구냐는 식이다.)


아니 학생 아직 미래가 창창한데 이러지 말고 보험료 돌려주고 마무리해요. 우리 차는 우리가 알아서 수리할게.


아니 제 차 많이 부서졌어요. 이거 수리비 많이 나와요.


그 차 오래된 차잖아요. 대충 고치면 될 텐데...


1차 통화는 대충 이렇게 끝났다.


그 사이에 알아보니 2달 보험을 들고 한 달 여 지난 동안 무려 사고가 12회가 났단다. 이런데도 경찰은 보험사 거기 생각 아니냐고 무시하면서 별로 조사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2차 통화 - 이번에는 너무나 고의사고의 확신이 들었기에 좀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학생, 생각 좀 해봤어요? 다 없던 걸로 하고 마무리하는 걸로?


아니오. 보험 처리해 주세요. 아니면 저는 계속 병원 가고 할 겁니다.


학생 아직 앞 날이 창창한데, 만약 이 건에 대해서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보험료는 모르겠지만 이거 끝까지 파헤치고 경찰에 신고해서 끝까지 갈 겁니다.


아니 진짜 왜 이러시는데요? 그냥 보험회사에 청구하시면 되잖아요? 그러려고 보험 드신 거잖아요.


(이건 거의 화도 나고 사정도 하고 애원도 하고 모든 게 복합된 호소다.)


학생, 그냥 치료비 32만 원 입금하고 마무리합시다. 무사고 건으로.


... 하....


잠깐만요. 다시 전화드릴게요.


그렇게 몇 번 끊고 다시 제시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하다가 결국 230여 만원을 입금하기로 했다. 마지막 과정이 사실 좀 갑작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번 끊고 제시를 하고 그런 식이었다. 정황상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어린 학생이니 뒤에 누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마지막 통화 과정에서는 우리도 거의 울 뻔했다. 학생의 한숨과 좀 어쩔 수 없는 그 상황이 느껴져서 죄책감이 들 지경이었다. 서로 오래 통화를 하면서 동화되는 과정을 거쳐서 그런가. 너무 어린 학생이기도 하고 너무 순진한 사기범 같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사고를 무마하고 나선 그 친구에게 100만 원이라도 입금해 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지나서 보니 이게 바로 스톡홀름 증후군의 전형적인 과정 같았다.)



하지만 두어 달 지나고 나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니 내 차는 앞 범퍼 좀 부서지고 치료비도 못 받고 와이프는 두어 달 병원도 다녔다. 그리고 그 고생을 했는데 죄책감에 시달리고 심지어 돈을 돌려주려고 했다니... 이게 흔히 말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 학생이라 딱하긴 하지만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비합리적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피해자는 명백한데 말이다.



몇 달이 지나고 뉴스에서 보도가 됐다. 어느 조직이 일망타진됐다고. 중간책이 있고 어린 학생이나 무직자들을 모집해서 고의 사고를 내는 식이었다고 말이다. 그 학생도 저 조직의 일부일래나. 아주 유사했다. 지역이 조금 다를 뿐. 그 어린 학생은 우리가 보낸 경고를 받아들이고 조용히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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