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 들뜸과 좌절 사이에서 균형 잡기
예를 들어 여행이 잦다 보면 여행이 일상이 된다. 그렇다고 일상으로 돌아온다고 갑자기 일상이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잠시 리프레시가 되겠지만 여전히 힘들다. 무리한 일상은 고통이 되고 지속이 되면 지옥이 된다.
매일매일 지옥이다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봤다. 내 머리에는 뿔이 자라고 악마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주변에 화를 내고 쉽게 짜증 내고 불을 뿜는다. 그리고 밤이 와도 끊임없이 반추되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떠오르는 누군가를 보이지 않는 칼로 휘둘러서 뎅강 베어내야 생각이 멈추는 방법을 개발해 내기도 한다. 더 심해지면 난도질을 하고 용이 내뿜는 화염으로 태워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몸부림치고 애쓴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평화로워야 할 밤은 지옥이 된다.
점점 더 일상이 힘들어졌다. 직장을 가면 누군가 나와 같은 지옥을 겪고 있는 사람이 없나 하고 머리에 난 뿔의 흔적을 찾아본다. 얼핏 보이면 가서 말을 걸어보지만 그때뿐 그 대화가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밤의 휴식을 깨는 재료가 되었다. 일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 나 자신에 대한 원망 - 자책에 이르기도 한다.
그 지옥이 절정이 이를 때쯤이었다. 그날은 집에서 심지어 제사를 지내는 기일이었다. 제사 준비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시작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미 직장에서 녹초가 된 상황이라 다시 발동을 거는 게 힘들었다. 준비하다 보니 새벽이 되었다. 다 마치고 나니 새벽 3시가 가까워졌다. 망자와의 대화를 괜히 시도해 보기도 하면서 문득 현실에서 한 걸음 떨어질 수 있었다.
새벽 3시에 제삿밥을 먹으며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조용히 단정한 옷을 입고는 생각했다. 지옥에 시달리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에 시달리기만 할게 아니라 땅에 더욱 굳건하게 발을 디디고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아니지만 세상에 다시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이 되어 어김없이 무례한 인간들이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참지 않기로 했다. 인내가 해결책이 된다고는 했지만 때론 인내가 변질되면 무기력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인내와 무기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혼재되기 시작한다. 어디까지가 인내이고 어디까지가 무기력인지 모호해진다.
암튼 오늘은 인내를 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비슷한 수준의 무례함으로 대했다. 보통 상대편은 자기는 몰랐다느니 혹은 장난이었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그리고는 속으로는 기분 나빠한다. 속은 후련하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든다. 사실 참지 않아도 마냥 해결되는 건 아니다.
참으면 끝이 없는 무례함. 안 참으면 비난 혹은 보복이 날아온다. 주로 뒤에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적당한 해결책으로 맞서는 것이다. 어떻든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런 말이 유튜브에선가 귀에 꽂혔다.
비 맞고 죽상을 하고 있어도 비는 계속 내린다. 비가 내리더라도 춤을 추는 것이 인생이다.
요즘 내린 결론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바위를 힘차게 밀어 올리자. 힘차게. 힘차게. 바위에 깔리지 말고. 참지도 말고. 힘차게.
그 돌이 굴러 떨어질 걸 알고 있으니 들뜨지 말고 하지만 즐거운 순간은 즐기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