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바꿔드립니다.
영원히 그리고 확실하게

- 마인드 리셋 컴퍼니

by ksoo


나는 나라는 것이 싫었다. 나는 나라는 것이 싫었다. 내가 나라는 것을 인지한 가장 어린 나이부터 나는 나라는 것이 거추장스럽고 불편했다. 어쩔 땐 누군가 나를 공격해서 상처를 입기도 하고 때론 반대로 내가 상처를 주어서 죄책감을 갖기도 하고 이래저래 불편했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싫었다. 심지어 나라는 존재가 과연 나인지조차 의문이 들었었다.


어렸을 때 생각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하는 7살, 8살? 옛날 할머니 댁에나 있는 빨간 자개장 앞에 잘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곡선과 곡선이 만나고 그 사이에서 날카로운 면이 생기기도 하는 장 바닥의 장식선과 방바닥 사이 그 틈. 어두운 심연 같은 공간을 바라보면서 공상을 했다. 그러다 과연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과연 내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인걸 어떻게 알지? 아직 너무 어려서 자기라는 부품이 어색해서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청소년기의 더욱 험난한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 자아에 대한 의심과 불편해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래서는 안 된다는 강박으로 내 자아를 억지로라도 나한테 갖다 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자아는 나에겐 불편한 존재였다.




당신을 바꿔 드립니다. 확실하게 그리고 영원히

-마인드 리셋 컴퍼니


어느 날 신경 공학을 연구하던 한 과학자가 영생을 연구 프로젝트에서 뇌를 다른 신체에 이식하는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다른 자아를 세팅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뇌를 다른 신체에 옮겨 심는 건 실패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이 발견은 곧장 사업화 됐다. 사람들은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 이 비즈니스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인격을 가질 수 있는 상품을 홍보했지만 사람들은 사실은 약간 바꾸고 싶어 했다. 완전히 자기를 바꾸는 것은 부담스러워했다. 사람들은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완전히 자기를 잃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 전인격 교체 상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부 튜닝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제는 더 이상의 콤플렉스는 없다. 우리의 자아는 손쉽게 튜닝이 가능해졌다. 좀 더 꼼꼼한 성격을 원하면 집중력을 높이고 창의적인 성격과 능력을 원하면 그런 쪽으로 스타일을 바꿀 수 있었다. 소심한 성격은 적극적으로, 덜렁대는 성격은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으로, 너무 나대면 좀 겸손하게 등등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세심한 세팅을 했다.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개인 소비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부모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서비스도 받아야 했다. 마인드 세팅을 위한 프리 세팅 비즈니스 - 제2의 사교육이자, 제1의 가정교육이 되었다.


시부모 : "애 성격을 좀 세팅해야 하는 거 아니니? 너무 부주의하구나."

며느리 : "저는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가정 내 교육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도 하면서 하지만 또 안 한 척하면서 조금씩 해나갔다. 아이들에게는 제2의 사교육, 어른들에게는 제2의 성형수술이 되어갔다. 캐릭터 성형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몇 년이 지나자 주변을 보면 모두가 성격이 호탕하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흔히 말하는 소극적이고 찐따 같은 성격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오늘도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분개하고 보복을 결심하고 좌절하고 또 잠시의 평화를 즐기고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쳐가고 있었다. 나라는 나에 대해서.


그동안은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생각으로 마인드리셋 제품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너무 보편화되고 나 홀로 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어떤 제품을 사야 되나. 부분 변경을 할까. 하지만 나는 나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싫었다. 그럼 나야말로 전인격 교체 구매를 해볼까. 아니다. 그럼 또 그저 또 하나의 나일 뿐이지 않은가. 그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삶이라는 이 장치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기분이 좋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잘 나가는 듯하면 그로 인해 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이 세상의 법칙 아닌 법칙 같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차라리 인격 교체 상품이 아니라 스위스의 안락사 상품을 사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또 그건 싫었다. 그건 나의 계획에는 없었다. 알고 보면 나는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걸까... 애증 관계의 연인처럼 말이다.


오늘도 직장을 가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차를 몰고 복잡한 사거리에 다다랐다. 여긴 항상 끼어들기가 어려워서 다소 긴장한 상태에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구간이다. 마음이 복잡했다. 에이 그냥 끼어들자. 괜찮겠지. 핸들을 훅 꺾었다.


사고가 났다.


사고가 났다. 사고는 큰 건 아니긴 했다. 약간 범퍼가 들어갔을 뿐 대단한 충격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내 안의 무언가가 우지끈하고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겨우 나를 유지해 오고 있었는데 내 안의 그 끈이 끊어지는 아니 기둥이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나를 놓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쳐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교통사고가 전체 원인은 아니지만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충동적으로 전인격 교체 상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 상품이 인기가 없다 보니 현재 이벤트를 많이 하고 있는 상태였다. 온라인 쿠폰을 발급받았다. 무려 70% 할인, 대략 모아 놓은 돈으로 할만했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의 자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버리고 좀 더 자유로운 자아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성격을 잘 세팅을 구상할 것이다.


거대한 건물이 나왔다. 이제는 거대 기업이 인수를 해서 더더군다나 재력이 상당한 기업이 되었다. 이 제품은 한 인간의 건강과도 직결이 되어 심장병을 덜 걸리게 하는 성격 개조, 위장병을 덜 걸리게 하는 건강형 성격 개조, 점점 세분화되고 점점 사람들은 여기에 의존하게 되어 갔다. 과연 이 상품이 좋기만 할까. 하지만 이미 결심을 한 바다. 못 먹어도 고다. 이런 심정으로 입구를 지나쳐서 들어갔다.


상담사가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 전인격 개조 상품을 원합니다"

상담사가 놀라는 눈치다. 근래에 보지 못한 손님일 것이니 말이다. 판매가 부진하다는 말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상품에 대한 후기가 적었다. 뭔가 신랄한 후기도 거의 없어서 사람들은 아마도 후기가 좀 조작되고 있지 않나 하는 후문이 돌았다.

“네, 당연히 가능합니다..”

“저는 이런 성격을 원합니다. 좀 더 다른 사람의 말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함. 혼자서도 뭐든지 척척 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성.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한 성격을 가지고 싶어요.”

“네, 말씀하신 대범함, 무심함 영역의 성격을 강화시켜 놓게 되면 아무래도 세심함은 다소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트레이드오프는 먼저 고지를 드립니다. “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전인격을 바꾸게 된다 해도 저의 기억은 가지고 가는 거죠? “

”물론입니다. 다만 기억을 인지하는 방식이 좀 달라질 겁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건이라도 그전에는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보았지만 이후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요. 또한 전에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았지만 이후 되돌이켜 보면 갑자기 그 의미가 커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부분 개조에서도 동일합니다. 다만 전인격 개조에서는 더 극명할 수는 있습니다. “

”네.. 그렇군요. “


깊은 잠에서 깬 듯 일어났다. 주변을 보니 병상이다. 기억은 난다. 자아 전체 변환상품을 구입한 것 말이다…

기억은 나지만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 이제는 예전의 비관적인 생각보다는 좀 더 낙관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나는 건 이거다. 과연 이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인간 본연의 고통의 극복이라는 과제 앞에서 달라지는 것이 과연 있을까.


전인격 교체를 하고 나서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 때 나와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들이 갑자기 친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반대로 멀어지기도 했다. 오랜 친구를 만났다.


“흔한 일이야. 저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로는 말이야. 그냥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니… 나는 사실 그 시술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그냥 그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연락처를 지워버려.”

“그래 나도 내가 이전의 나의 기억이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해… 그럼 오늘 만남이 우리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겠네..”

“그래도 우리가 만난 세월이 벌써 20년은 되어가는데… 아쉽네.”


예전 같으면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나름 쉽게 받아들여졌다. 성격이 변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유심하게 관찰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유심히 관찰할수록 더 다르게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그 게슈탈트 붕괴처럼 말이다. 부작용인가.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댓글이나 후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sociopass : 바꾸고 나선 사회생활이 너무 편해졌어요.

*familiy pHO : 가족들과도 심지어 사이가 좋아졌어요.

*Frenemy : 데면데면했던 친구와도 급격하게 친해졌어요. 아마 저의 내면의 문제가 사라지면서 묘한 열등감, 질투 이런 것들이 같이 사라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요즘은 너무 행복해요.


대부분 이런 글들이다. 다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 천 건은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실 카페에서 동일한 인물을 볼 것 같기도 한데 동일한 인물이 일정 시간이 지나서 한 댓글 같은 게 없어 보였다. 매번 새로운 후기 글들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로 금전적 유인으로 인해 글들을 적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보였다. 부정적 후기. 나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시술을 받은 후에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고 자꾸만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누군가를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이상한 변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뭔가 폭력적인 감정이 올라온다는 그런 내용.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그 글이 사라졌다.


부정적인 후기, 댓글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디를 기억해 냈다. 어렵게 메일을 찾아서 보낼 수 있었다. 며칠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답장이 왔다.


reply : 망설이다가 답장 보내요. 저 혹시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나요?


매우 조심스럽게 답장이 왔다. 마치 어딘가의 감시를 피해서 말하는 듯 말이다.

- 네, 가능합니다. 편하신 시간, 장소를 알려주세요.

⁃ 명동역 앞에서 특정한 색의 옷을 입고 나오시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 네 그럼 파란색 재킷을 걸치고 있겠습니다. 가방도 파란색 백팩으로요

⁃ 시간은 이번 주 토요일 3시쯤으로 할게요.

⁃ 네, 그럼 그때 뵙죠.


옛날에 이메일을 메신저로 활용했다던 블랙베리처럼 이렇게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고 이메일로 대화를 주고받고는 약속을 정했다.


상가 앞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만났다. 첩보영화를 많이 봤나… 좀 오버스럽네 하고 생각하면서 만났다. 여자였다. 여자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상상과 기대를 하면서 가까이 갔다.

- 부작용이 있었나요?

- 저는 열흘 가까이 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리고 환각에 시달리고 하고요.


그리고 어느 날은 알 수 없는 공격성이 생겨서 참느라 힘들 때가 많았다고 했다. 나는 사실 이상하게 사람들을 의심하는 병이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 순진할 정도로 사람들을 믿는 편이었는데 이 시술 후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 친구들도 그렇고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도 이상하게 의심이 되어서 여친의 차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붙여야 하나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여자가 계속 움직이자고 했다. 왠지 자기를 누군가 감시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나름 의심병이 있었지만 이 여자는 좀 오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같이 걸었다.


서로 의혹의 갈증을 풀었다. 그날은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에 언제 다시 한번 시간을 두고 더 관찰한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집에 와서 계속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멀스멀 두통이 올라오고 메스꺼운 증상이 생겼다. 자아에 대한 이물감일까... 그리고 두 번째 약속을 했다. 이번에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급해 보였다.



"내일 만나요. 같은 장소에서. 시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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