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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영재 Jul 10. 2018

건축가는 방크기를 묻진 않아요.

왜 실패하는가 #4

좋은 집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


첫번째로, 나 자신이 '좋은 건축주'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건축주의 곁에서 그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좋은 건축가'를 만나야 한다. 그런 다음 '좋은 시공자'를 만나 뜻하던 결과를 얻어야 한다. 매우 명쾌하고 간단하지만 조합이 완성되기는 쉽지 않다.

건축주는 건축가와 시공자를 의심한다. 모든 비용이 제대로 쓰여지는 것 같지 않다. 건축가는 태만하여 건축주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으며 시공자에게 많은 것을 미뤄놓는다. 시공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 도면을  읽지 못하고 하던 습관대로 대충 마무리를 짓고 만다. 만약 이런 조합이라면 최악의 상황이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많은 경우 위와 같이 흘러간다. 서로 불평하고 험만 말들이 오가며 결국 법정 다툼까지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간단해 보였던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마지막 '자기암시'만 남았다. 평생을 '내 집은 좋은 집이다'를 되뇌이며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다.


좋은 집을 갖기 위한 첫번째 조건, 좋은 건축주가 되어보자.


좋은 건축주는 간단하다. 건축가와 시공자를 신뢰하고 건축가에게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이 어떤 집인지 대화를 통해 쏟아내어 주면 된다. 하지만 건축주에게 이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첫 대면에서 거의 대부분의 건축주는 제가 무엇을 준비하면 되는지 되물어 본다.

방 크기나 부동산에서 알려준 이 땅에서 최대한으로 지을 수 있는 면적과 공사비만 염두 할 뿐 내 집에 대한 꿈을 꾸지 않는다. 내가 가진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내 집의 가치로 착각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살림집도 결론적으로 부동산이고 여태껏 이 부동산의 그림자 끝자락에서 벗어나지 못해 몇 평형, 몇 제곱미터에서 멈춰 섰다.


부동산 중 살림집은 이제 그 가치에서 내려놓자.


면적보다, 평당 금액보다, 그 집이 놓여있는 지리적 이점보다 누가, 왜, 어떤 삶이 이곳에 머물러 있는지에 집중하자.


한창 부동산 붐이 일었던 예전을 상기해보자. 10자 방, 12자 방. 어릴 적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이사 갈 집의 방이 몇 자인지 복덕방 할아범에게 물어봤다. 이번에 큰 돈 들여 새로 장만한 자개장을 놓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대나무 자 한자루 들고는 직접 재어 보기도 했다. 새로 지을 집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건축가 역할이었고 아버지는 시공자 역할이었다. 새 집의 가치 척도는 몇 자 농이 들어 앉을 수 있으냐로 결정 지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화려한 자개장은 사라졌고, 방은 가구를 모셔놓는 장소라는 개념도 사라졌다. 세대가 한번 거쳐 가면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는 건축가에게 방 크기를 요구하지 않아도 좋다.


방 크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그 방을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 그 욕구의 척도를 일러주어야 한다. 비교적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이면 더 좋다. 약간은 불확실한 요구일지언정 건축가는 그 확정짓지 못한 가능성을 공감하고 필요 적절한 공간을 제시할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안방은 언제나 따뜻하고 숙면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공허한 감은 줄이고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은 배제하고 잠들기 전 책 한권 옆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표현이면 충분하다.

‘따뜻한’은 색감일 수도 있고 성능 좋은 보일러 온수일수도 있고, 일조량일수도 있다. ‘숙면’을 위해서는 방의 높이, 용적일수도 있고, 벽지의 색상이나 조명의 조도 일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저 문장에는 숨어 있다.


‘따뜻한, 숙면, 공허한, 거추장스런, 한권의 책’을 위한 치수와 공간을 조직하고 난 결과가 10자 일수도 있고, 12자 일수도 있다. 하지만 10자, 12자의 공간이 가진 성격은 아니다. 예상되듯이 모든 조건의 종합을 단지 10자방, 12자방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얼마나 큰방이 필요한지’의 질문은 어리석다. 하지만 많은 건축가들이 크기를 여쭤보는 것은 아직 내가 갖고 싶은 집, 그리고 그 방이 어떠해야 할지 대한 준비가 덜 된 경우가 많아서다. 심사숙고가 되었다면 그리고 이제 건축가가 몇 자방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장황하게 미사어구를 곁들여 말해주면 된다.


건축가는 당신에게 cm가 아닌 mm로 대답할 것이다.


이제 건축가와 구체적인 대화를 나눠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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