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축가 이영재 Jul 12. 2018

일본건축기행 2-5

데시마(豊島)_Teshima Art Museum

[ 2 일차 ] _ 자연에서 한부분을 지워 인간의 상상력으로 메운 미술관


우노항에서 데시마행 뱃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6시 30분에 체크 아웃을 하고 구라시키역에서 오카야마역으로 향했다. 환승을 위해서는 시간이 좀 남아 카페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했다.

이 샌드위치 한조각이 저녁으로 편의점에서 산 즉석 인스턴트 라면을 먹기전까지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이떄는 몰랐다. (데시마와 나오시마에서는 오후 이른 시간 왠만한 식당들은 문을 닫는다. 꼭 안내서에서 식당 폐점 시간을 확인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노역(宇野駅)에서 내렸다. 배 출발까지 15분 남았다. 페리 선착장까지는 멀지 않다. 하지만 데시마행 페리를 타는 곳은 여기가 아니란다. 분명히 데시마(豊島) 이정표, 글자를 따라 왔는데.

이제 부터는 달려야 한다.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배와 매표소가 보인다.


오전 9시, 배는 20분간 물살을 갈라 이에우라항(家浦港)에 내려놓았다. 아침에 내리던 비는 여전하고 많이 쌀쌀해졌다. 하늘이 언제 개일지는 알 수 없고, 자전거는 이 비를 맞으며 페달을 밟을 자신은 없고, 데시마미술관(豊島美術館,Teshima Art Museum)행 작은 미니버스는 좀 기다려야 한다.

데시마미술관은 10시 오픈이고 미니버스도 그 시간에 맞춰져 있다. 한시간 가량을 이에우라항에 머물면서 데시마와 나오시마, 그리고 각 섬을 오가는 배편의 시간이 나와있는 관련 안내서를 챙겼다.


우노항으로 데려다줄 노란 전철과 우노역 그리고 작은 데시마행 페리 매표소
이에우라항과 비편 시간표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인 미니버스


미니 버스를 타고 10여분, 데시마미술관(豊島美術館,Teshima Art Museum)이 보이질 않는 산 중턱에 내려준다. 다시 우산을 펼치고 미술관 전경을 볼 수 있는 위치로 향했다. 옷도 젖어 들고 점점 추워졌다. 무언가를 보기 전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지.


데시마미술관은 무심하게 하얀 치즈 한덩어리 처럼 땅속에서 조금 쏟아 있다. 그 무심함이 곧 감동으로 이어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술관과 200여미터 떨어진 언덕 위에 정류장이 위치한 것은 미술관을 제대로 관람하기 위한 배려다. 관람을 위한 그 짧은 거리의 여정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다. 입구 근처 길가에 내려놓고 가도 될 법하지만 굳이 미술관이 채 보이기도 전에 내려 놓고 관람자로 하여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를 준다. 몇 발짝만 떼어 놓고 보면 바다다. 그리고 주변에 어떤 표식이 될 만한 것들도 보이질 않는다. 데시마미술관 마져도 약간 봉곳하게 솟아 있을 뿐 주변 경관을 헤치지 않는다.


이런 접근의 여유는 미술관을 보기 위한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포메이션에서 관람권을 구매하고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고 나면 매끈한 시멘트 포장 길을 돌아 접근한다. 고개 숙여 무심한 듯 그냥 밟고 지나야 하는 포장 길은, 굳이 과정을 엿가락 늘인 듯 하지만, 숲을 지나고 바다를 관조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람을 허락케 하는 전조에 해당한다.


동선은 길다. 그 길이 만큼 감동의 시간도 길다.


미술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된다.

중요한 것은 사진 촬영은 안해도 된다. 보고 싶다면 그냥 가서 봐야 한다. 남기고 싶다면 어디서든 앉거나 아니면 서서 한동안 바라 보고 그려보는 걸 권하고 싶다.

조용히 걷다 보면, 어느 한 곳에서는 구멍이 하나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는 두개의 오픈이 같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적을 감싸쥔 공간이 품은 자연은 비, 바람 그리고 흐린 하늘 빛에 묻혀 더욱 자연스럽다. 이 공간을 접하기 전 균형감을 잃고 자칫 조형에만 치우쳐 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군걱정 꺼리였다.


잠시 동안 미술관에서 그린 내부 스케치, 형태가 아니라 느낌을 담고 싶었다.



" 내부의 형언하기 힘든 공간감과 하얗게 펼친 면 그리고 그 틈에서 보여지는 숲과

  하늘 그리고 바람은 자연에서 한부분을 지워

  인간의 상상력으로 메꾸어 놓은 듯 하다. "


나는 비가 오는날 산사(山寺)와 산사에 이르는 길을 좋아한다. 비는 사람을 모으지 않고, 습도 높은 바람은 깨끗한 공기를 품어 고즈넉한 산사에 무게감을 더한다. 20여년 전 순천 선암사(仙巖寺)를 찾았을 때가 지금과 같았다. 좋았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극적인 공간감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미술관이 채 보이지 않던 그 곳에서 부터 이 여정이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감정이 돋아났을까?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그 접근,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데시마미술관_파노라마뷰


데시마미술관(豊島美術館)은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 1966生)의 작업이다.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 1956生)와 함께 이름의 앞 글자를 딴 SANAA(Sejima And Nishizawa And Associates)라는 건축사무소를 1995년 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2010년 프리츠커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공동 수상하였다.


바닥에는 군데군데 물방울이 맺히고 뭉쳐 또르르 굴러 한지점으로 모여 든다. 그리고는 사라진다. 나이토 레이(内藤礼, 1961生)의 작품이다. 원류는 '샘(泉)'이다. 그리고 뚫어 놓은 하늘에는 긴 리본을 늘어뜨리고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에 유유하게 흔들리고 비가 오면 리본을 따라 흐른다.


니시자와 류에와 나이토 레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이라는 요소를 볼록 렌즈 닮은 물방울 형상의 공간과 2개의 오픈으로 통해 전해지는 바람과 비 그리고 소리와 빛을 새하얀 공간과 흔들리는 리본, 바닥을 흐르는 샘으로 모두 귀결시켰다.

물방울과 리본을 살펴보자 / 사진 : 데시마미술관 홈페이지 | http://benesse-artsite.jp


좌 -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와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 / 우 - 나이토 레이(内藤礼)


추위에 언 몸을 따뜻한 코코아 한잔으로 녹이며 한참을 이 공간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 사진:석정민


미니버스를 타고 데시마 미술관에서 출발하여 이에우라항에 도착하면 나오시마(直島)로 향하는 배를 타기 전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정오는 지났음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춥다. 시간이 애매한 바람에 점심은 굶었다. 이런 날씨에는 걸어야 추위와 허기를 조금은 견뎌낼 수 있다.


이에우라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의 요코하우스(Teshima Yokoo House, 豊島横尾館)를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요코하우스는 요코오 타다노리(横尾 忠則,1936生)라는 일본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건축가 나카야마 유코(永山 祐子,1975生)에 의해 민가 3채가 리모델링 및 증축되어 만들어 졌으며, 2013년 개관하였다. 유코는 요코하우스로 2014년 일본건축가 협회(JIA) 신인상을 받은 여성 건축가다. 쇼와 여자대학 생활환경과를 졸업했다는 이력에서 볼 때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은 듯 하다.



나는 간혹 이런 이력에서 매력을 느낀다. 그러니까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새로운 시선에서 신선함을 느낀다. 경계가 없고, 잘못 이식된 관념에 두려워하지 않는 작업들이 좋다. 독특하다. 어느 부분이 건축가의 작업이고 또 어느 영역이 요코오 타다노리의 작업인지 경계를 지을 수 없다.


바깥의 붉은 빛 유리와 거기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일루젼, 마당에 늘어놓은 붉은색 돌 덩어리들, 세로로 긴 원통속 끝없이 무한한 공간(높이는 14미터에 이른다), 모두가 이색적이다. 리노베이션을 거친 이 미술관의 중앙부는 속 구조체만 남기고 겉껍질은 도려냈다. 기존의 흔적을 무의미하게 고스란히 남겨놓은 재생건축물이 아니라 건축가의 해석이 이식되어 새로운 형식의 패턴을 삽입해 놓았다.


작가의 깊은 속내를 간파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같은 관점에서 볼 어떤 이유도 없다. 2013년 이전 이 집은 데시마에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했었고, 그 이후로는 새로운 의미로 가치가 존속되고 있다.

재생은 시간성도 중요하지만 의미있는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 그 재생의 생명력을 더하는 길이다.


배는 13시 35분. 지체할 것도 없이 나오시마(直島) 미야노우라항(宮浦港)으로 건너간다.


건축가 이영재 | 건축사사무소 이인집단 
엉뚱발랄하여도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이너리그 건축가
070-7706-5100 | yjlee@othersa.kr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건축기행 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