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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영재 Jul 03. 2018

집을 선택하기 까지

작은집 #2

2. 집을 선택하기 까지


crescendo 혹은 decrescendo


우리가 집을 선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흡사 자동차의 옵션 선택과 유사하다. 기본 사양에는 꼭 가지고 싶은 기능은 빠져있다. 필요한 옵션은 생각했던 트림보다 상위 트림에 있다. 항상 그렇다. 절재를 잊어버리고 부족한 옵션을 하나씩 선택하다 보면 결국에는 최고급 사양을 선택하게 된다. 소박하게 경차에서 머물렀던 현실이 꿈의 고급사양 차량으로 순식간에 변모된다.


집도 마찬가지다. 세탁기를 넣고 나니 건조기를 두고 싶어진다. 냉장고를 두고 나니 김치 냉장고를 둘 공간이 부족하다. 화장실은 하나 였지만 갑자기 안방에 별도로 간단하게 화장실을 마련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다 보면 점점 내가 요구하는 집의 크기는 커질 수 밖에 없다. '남들과 같은' 공간을 갖추어야 한다면 점점 커져 간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언급되었듯이 우리는 '남들과 같은'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내 삶을 그들의 삶처럼 맞춰놓지 않고서는 '남들과 같은' 집이 나에게도 좋은 집이 될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완벽한 디자인 이라는 건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무엇인가가 없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법이다.』- 쌩택쥐페리 -


이제는 나 자신에게 오로지 맞춘 완벽한 디자인에 도전해 보자. 놀러갔던 친구 집의 긴 식탁이 놓여진 다이닝룸을 하루 빨리 머리속에서 지워버리자. 왜냐하면 긴 식탁이 차지한 공간은 단지 그 용도로 밖에 활용되지 못한다. 다른 용도의 공간을 위하여 그만큼의 면적이 더 요구된다.

가령 침실에서 잠을 자는 단 몇 시간을 위하여 하루 종일 버티고 있는 침대가 놓여진 면적은 통로를 포함하면 2평 남짓 될 것이다. 30평 주택이라면 그 공간은 1/15을 차지한다. 이 말은 공사비의 1/15 들여 만들어 놓은 것이 하루의 3/4기간동안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반대 방향이다. 경차의 방향이다. 점점 작게 '다용도의 기능'을 갖춘 공간을 가지는 것이 부담을 줄여줄 것이다. 집을 작게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다용도'라는 방법적 도구는 다시금 당신의 밤잠을 못이루게 했던 그 친구집의 다이닝룸을 가지게 해 줄 수도 있다.

불가능한가?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미 그 방법을 잘 알고 그리고 이미 몸으로 익혀 왔었다.


우리 전통 살림집은 별채로 멀리 뒀던 뒷간을 제외하면 방과 정지(부엌) 뿐이었다. 근대적인 주거 건축이 진행될 때에도 한동안은 그랬다. 거실이라는 이름부터 생소하고 무슨 공간인지 불분명한 이상한 가부장적 공간이 주거에 도입되고 각 기능마다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방 이름을 그 기능에 걸맞는 이름으로 지어 붙이면서 집의 면적이 커지기 시작했다.



제주 민가의 평면과 배치


하지만 예전 살림집은 달랐다. 방은 다용도 공간이었다. 시간에 따라 그 기능이 바뀌었다. 침실이었다가, 식당이었다가, 거실이 되었다. 방 하나만 있으면 모든 기능을 갖출 수 있었다. 완벽한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불편한 한옥을 다시 짓자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한옥을 지을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라면 충분히 부담스러운 다른 형태의 큰 집을 지을 수 있다. 우리는 한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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