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이 연아 두 돌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름대로 선물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연아가 선물을 받는 게 참 좋았나보다. 9월쯤엔가 바깥 일을 마치고 밤에 집에 들어갔는데 연아가 뛰어나와서,
"아빠, 선물 가져왔다."
라고 말하며 내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선물 없다.'라고 말하면 연아가 실망할까봐 그냥 교과서를 꺼내서,
"이거 연아 선물."
하고 내밀었다. 연아는 좋다고 받아가서 엄마한테,
"엄마! 아빠가 연아 선물 가져 왔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교과서 표지의 그림을 보며 재미있게 놀았다.
내가 집에 갈 때 연아는 자고 있기도 하고 안 자고 마중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저 일이 있은 뒤로 연아가 안 자고 마중나올 때는 무조건
"아빠, 선물 가져왔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손씻으러 가느라 못 들은 척하면 다가와서
"아빠, 선물 어디 있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하는지라, 그때마다 가방 안에서 회의에서 받은 간식이라든지, 기념품으로 나눠준 수건이라든지, 영재수업자료집이라든지, 학교에서 행사 때 만든 종이접기라든지 닥치는 대로 꺼내 주었다. 기념품이나 종이접기 같이 선물처럼 생긴 게 있는 날은 왠지 뿌듯하고, 책이나 자료집 같은 어설픈 걸 선물이라고 주는 날은 꺼림칙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아는 매번 "엄마, 선물."하면서 엄마한테 자랑하러 간다.
그걸 3개월이 지나 11월이 된 지금까지도 반복하고 있다. 그저께만 해도 후배 교사가 기념품 수건을 줘서 받아왔는데, 여지없이 연아가
"아빠, 선물 가져왔다."
하길래 '마침 선물처럼 생긴 게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학과에서 내 소논문이 실린 학회지와 별쇄본 10개를 서류봉투에 담아 주었다.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는데, 반가운 발소리가 탁탁탁탁 들리더니 연아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나는 습관처럼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어 연아한테,
"연아야, 아빠 선물."
하면서 내밀었다.
연아는 봉투를 받아들고 엄마한테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선물 계속 들고 오노?"
나는 기가 막혔다. 내용도 내용이고 저 말투부터 의미심장하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26개월 된 아기한테 "너 방금 그게 무슨 뜻이야? 궁금하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이상하다는 거야?"라고 물어본들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도 없을 게 뻔하지 않은가. 나중에 한 다섯 살쯤 되면,
"너 그때 아빠가 선물 맨날 가져와서 기분이 어땠어?"
라고 물어봐야겠다. 애들은 기억력이 좋으니까 아마 대답해 줄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의 일도 물어보면 답해준다고 하니까.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