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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성지곡 동물원, 2016

by zipnumsa


옛날에, 대학생 때,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이 공짜였을 때, 초읍 사는 친구가 있어서 동물원에 엄청 자주 놀러갔는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오는 날 동물원에 가는 이야기를 소설에선가 수필에선가 쓴 적이 있기도 하듯이, 그 때의 동물원은 정말, 쇠락해 가는 모든 것이 그렇듯, 아늑하고 편안하고, 애잔함을 주는 곳이었고, 그 느낌이 좋아서 더 자주 찾게 되었는데, 언젠가 재개장 준비로 문을 닫은 뒤로는 영영 발길을 끊었다가, 어린이날을 핑계로 십수 년만에 아기와 함께 다시 찾은 동물원은, 옛날의 동선이 남아 있어서 반가우면서도 그때의 동물들, 우리 안에 자꾸 머리를 박던 백곰이라든가, 낮은 울타리지만 뛰어넘어 산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던 토끼라든가, 좁은 우리에 가득찰 만큼 멋진 뿔을 자랑하던 산양이라든가, 그보다는 더 많았던 빈 우리들이 그립고, 동물들도 웬만큼은 갖추어져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정비되어 있어서 볼 거리도 많아 재미있으면서도, 이 황금 연휴에 이 정도의 관람객밖에 없어서야 저 동물들을 다 먹여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떨쳐지지 않는 찰나, 호랑이의 드러난 어깨뼈와 달라붙은 뱃가죽이 눈에 들어와 박혔고, 부산시 차원에서 세금을 이용해도 좋으니 부산 시민, 아니 나를 위한 동물원이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빌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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