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아는 "연아 혼자.", "시더~", "아니야." 이런 말을 자주 한다. 23개월하고 10일 지나는 중이다.
점심 먹으러 할머니집에 갔다. 할아버지는 마루에서 포도를 드시고 엄마, 아빠, 연아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카레를 먹어본 연아가 "맛있다"라고 하면서 잘 먹었다. 엄마가 먼저 다 먹고 설거지하러 간 사이 아빠도 마저 다 먹고 연아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연아는 평소처럼 밥이 남았는데도 "할아버지 포도 보자."라고 말하며 아기의자에서 일어나서 가려는 몸짓을 했다. 보통은 연아를 안아 내려서 "그래, 가서 보고 와." 이렇게 말할 텐데 어제 스마트폰을 뺏을 때 자지러지게 울었던 기억이 나서, 절제력을 길러 주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였다.
나는 결심을 하고는, 연아의 팔을 꼭 붙잡고 눈을 똑바로 뜨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연아야, 할아버지 포도 보러 갈 거야. 근데 그 전에 이 밥 다 먹어야 해." 이렇게 말했다. 혀 짧은 목소리로 "시더~"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연아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아기의자에 도로 앉았다. 그리고 밥을 받아 먹었다.
한 숟갈 먹더니 또 내려 달라고 하길래 내려 주니까 김 통을 뒤적여 김을 꺼냈다. 김을 가지고 놀도록 두고 나도 김 한 장을 꺼내 조금씩 뜯어서 밥에 싸 먹이니까 또 몇 번 받아 먹었다. 여기까지는 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연아 밥 잘 먹고 있나?" 하면서 다가 오자 연아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무서워."
나는 충격을 받고 놀랍고 후회스럽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가자고 하면서 마루에 가긴 가는데, 할아버지 쪽으로는 가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이제 밥 다 먹었으니까 할아버지 포도 보러 가도 돼." 했더니 또 "아빠 무서워." 하면서 끝내 가지 않았다. 평소라면 "할아버지 포도 보자." 하면서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있었을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아빠가 무서웠구나." 뿐이었다.
물론 그 뒤에 "아빠 안아 주."하면서 안겨 있기도 하고 내가 까 준 포도를 냠냠 잘 받아 먹기도 했다. 하지만 내 머리에선 "아빠 무서워." 하던 연아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단호한 표현이 효과가 있구나, 아기라서 무작정 떼를 쓸 줄 알았는데 순간적으로 참으려는 마음도 생기는구나, 앞으로 휴대폰이나 텔레비전을 보여달라고 할 때도 단호하게 표현해야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훈육이 필요한 줄은 알지만 혹시 아기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