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어린이날

by zipnumsa


 어린이날이다. 작년에는 돌도 안 된 아기라 어린이날이 무의미했는데 20개월 아기는 제법 뛰기도 하고 의사표시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도 알고 엄마 심부름도 하고 벌써 다 큰 아기 같아서 어린이날을 즐길 준비는 된 듯하다. 엄마는 어린이날 선물도 준비했다. 어린이대공원을 갈까 하다가 다대포에 <부산유아교육진흥원>이 있는데 거기서 어린이날 행사를 한다기에 가 보기로 했다.

 무대에선 마술 공연이 한창이고 더워 보이는 인형탈을 쓴 자원봉사자들이 아기들이랑 사진도 찍혀 주고 있었다. 어른도 많고 아이들도 많고 체험부스도 많았다. 만3세 이상이 대상이라 약간은 어려웠지만 그럭저럭 연아가 구경할 정도는 되었다. 체험부스는 줄이 길어서 뭐 있는지 훑어만 보고 넓은 곳으로 나와 놀이터와 화단, 연못, 동상 등을 구경했다. 이것저것 조금씩 구경해서 최대한 많이 보고 가려는 마음 급한 아빠 엄마와 달리 연아는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신중하게 생각하며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언니, 오빠들이 노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한 곳으로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끈다. 그리고는 한참을 거기에 머물면서 질리지도 않고 노는 것이었다.

 그 중에 마음에 들어 한 것은 경사를 따라 굴러 떨어지는 당구공 놀이였다. 경사면은 4층까지 있었는데, 1층에 도착한 공을 2층 경사면에 계속 올리면서 굴러가는 공을 구경하였다. 자리를 잘 잡아서 모든 공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에 앉은 덕분에 공은 부족하지 않았고 쉬지 않고 공을 올려놓으며 2층에서 비스듬하게 굴러가는 공을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진 듯했다. 나는 조금 떨어져서 연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다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몰려왔다. 카메라 앞을 가리는 사람들 사이로 겨우 연아를 찾아 찍으려는데 연아가 울먹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가 하고 가보니, 1층에 모인 공을 2층에 올려야 되는데 다른 아이들이 자꾸 그 공을 가져가니까 연아 몫이 자꾸 줄어들어서 안달이 나는 모양이었다. 공을 미리 챙겨 봐도 양손에 하나씩 두 개밖에 못 챙기는데다가 눈앞의 공은 연신 다른 사람들이 꺼내 가니까 그게 속상한 것 같았다.

 그랬구나. 그동안 집에서 혼자 놀 때는 전혀 몰랐다. 항상 모든 장난감이 자기 거였고, 엄마 아빠는 자기 놀이를 도와주어서, 연아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놀았겠지. 여기서도 그런 느긋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장난감은 내 장난감이다, 저 공은 다 내 공이다, 내가 이 놀이터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갑자기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내 공을 가져가고 내가 올리려는 경사면에 먼저 공을 올려버리고 굴러가는 공도 구경 못하게 시야도 막 가리고.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놀이터는 함께 노는 곳이고, 놀잇감은 친구들 모두의 것이며, 그래서 배려도 하고 순서도 지켜야 하고, 때로는 경쟁도 해야 한다. 집에서는 내가 늘 주인공이지만 밖에 나오면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겐 조연일 뿐이고, 때로는 엑스트라, 때로는 촬영에 방해되니까 잠시만 비켜주실래요 하는 말도 들을 것이다. 나를 향한 모든 카메라가 나를 찍기 위함은 아니다. 내 뒤의 더 멋진 풍경을 찍기 위해 우연히 내 쪽을 향할 뿐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것이 내 몫을 빼앗기거나, 내가 무시당하는 일, 서운하고 속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인생의 진리임을 일찍 깨달을수록 삶은 행복해진다.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누가 주인공이냐 조연이냐를 따지기 전에, 내 삶 속에서 내가 맡은 주인공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를 항상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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