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분 동안

정성

2020.12.14.22:55~23:05

by 지숲

뚜 - 뚜 - 뚜 - 뚜 - 삐, 현관 앞에 서서 번호키 비번을 눌렀다. 하지만

삐비비빕.


번호키는 열리지 않았다. 추워서다. 짐작컨데 그렇다. 기온이 떨어지면 번호키는 자꾸 말썽을 피웠다. 보일러를 ‘외출’ 모드로 설정하면 보일러 동파는 막을 수 있어도 현관 번호키 고장은 막을 수가 없다. 거기다 그 외출이 길어지면 번호키는 ‘삐오’하지 않고 자꾸 ‘삐비비빕’ 그랬다. ‘삐비비빕’ 그건 ‘에라야~’ 이 말이다. 그러다가도 어느순간 열리기 때문에 심호흡을 하며 번호키를 재차 눌러댔다. 하지만 '삐오' 대신 ‘삐비비빕’ 소리만 연이어 울렸다. 번호키를 식은 두 손으로 꼭 감쌌다. 안 그래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손은 이미 체온을 상당히 빼앗겼는데도 얼어붙은 현관에 닿자 더욱 빠르게 식어갔다. 그래도 손을 거두지 않고 거기다 입을 갖다대고 불었다. ‘하 -’ ‘하아 -’ ‘정성’이란 말은 이런 데 어울리는 말이다. 정성을 다해 두 손에 온기를 집중하고 번호키를 꼬옥 안았다. 그리고 ‘하 - 하아 -‘ 식은 두 손의 온도만큼 번호키는 따뜻해졌다. 둘 사이 온도 차가 거의 사라졌을 즈음, 나는 다시 번호키를 눌렀다. 뚜 - 뚜 - 뚜 - 뚜 - 삐,


삐비비빅.


정성이란 건 우리 삶에서 꽤 귀중한 편에 있지만 곧잘 우릴 배반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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