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지 Apr 05. 2024

그것도 사랑이에요

2024 제14 회 젊은 작가상



일전에 선물 받았던 책이다. 매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하루에 두세 편씩 읽다 보니 일주일 동안 한 권을 다 읽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독서란 스스로의 가장 큰 효능감을 느끼게 하는 취미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읽었던 책을 복기하면서 짧은 글을 써 보기로 한다.



대상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 글을 읽으면서 사실 여성 서사에 대해서 조금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여성 서사를 읽어서 다소 고루해진 상태가 아닐까 하는... 하지만 소설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이 있다. 여성들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삶을 그대로 전수 또는 전승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자들의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극한의 상황에서의 여자로서 또는 여자라서 겪은 어렵고 힘든 일들에 대해서 증명하고 보여 주며 이를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나의 대안보다 더 나은 것들을 네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발견. 멋진 일이다.



김멜라 제 꿈 꾸세요


판타지 소설의 느낌이 강했다. SF까지는 아니겠지만, 죽은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마지막 인사를 꿈에서 하게 된다면 어디에서, 누구에게 할 것인가 하는. 죽음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즐겁고 행복한 감상도 어려울 것 같고, 무엇보다 유쾌한 일은 아닐 테니까. 혹여 죽어서 누군가의 꿈에 나타난다면 로또 번호나 불러 주기를 바라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이라는 현실 세계를 실재를 떠나갈 때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서 서로를 만났을 때, 그때에 느낄 수 있는 진심 같은 것들에 대해 떠올려 본다.


성혜령 버섯 농장


사실 위 두 편의 작품은 크게 감흥이 없었으나 다 읽고 나서 킥킥 웃어 버렸던 이야기가 바로 버섯 농장이었다. 그 남자가 죽었든지 말았든지 그게 진화였든 아니든 또는 기진이가 그 일에 공모했든 방임을 했든 모든 것은 나에게 크게 상관없었다. 무책임한 사람은 죽어도 돼. 너무 가혹하고 너무 냉정한가? 그래도 나는 그녀들에게 한없이 공감하고 그녀들을 이해한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살면서 잘못할 일 하나 없을 것 같지?라고 묻는다면 혹여 그렇게 된다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반문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이 소설도 너무 좋았다. K-장녀인 문희가 가지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나와 맞물려서일까. 어쩌면 자매란 존재는 한배에서 같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또한 나의 경험치에 의한 감상이겠지만 말이다. 같은 부모님 아래의 다른 두 여성의 차이라는 것의 기저에는 어떤 것들이 작용할까 하는 생각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가장 잘 아는 것 중에 하나는 나는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렇지 않은, 반대되는 것들에 대한 은밀한 동경이 있다는 거. 완벽하게 다른 자매, 그리고 두 여자, 이삼십 대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약방의 감초 같은 어머니와 문희의 여자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사랑스러운 덤처럼 느껴진다.


정선임 요카타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증명하고 살고 싶어 한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 하지만 어떤 사람은 본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많은 것들을 증명하고 산다. 그것은 남들이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또는 칭찬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 세상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인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감추어진 비밀. 은밀하지만 거대하고 아주 넓고 깊어서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은 아주 밝고 희었다.


이제 일곱 시쯤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라디오에서 시보를 전한다. 다시 눈을 감는다. 졸려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눈을 감는다는 것은 눈꺼풀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검붉은 배경 위로 흑점이 떠다닌다. 눈을 뜨고 있을 때도 날파리처럼 아른거리던 흑점들은 눈을 감으니 더 선명해진다. 나이가 들면서 흑점의 개수도 늘고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주위가 차츰 훤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흑점의 배경이 검붉은 빛에서 노을빛으로, 그리고 복숭앗빛으로 점차 옅어진다.
그래서 이 소설의 본질은 서연화의 셀프 인터뷰다. 작가는 몇 군데에서 그가 눈을 감는 행위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그가 자신의 진실 안에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서연화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한다.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작가는 서연화의 눈꺼풀 안쪽까지 들여다보며 그의 진실을 함께 지켜낸다. 너무도 긴 시간과 많은 감정이 응축돼 있어서 다른 말로 바꿔 쓸 수조차도 없는 한 단어 '요카타'로 귀결될 그런 진실을. E.M 포스터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실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말하는 다른 인간들 만나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딱 그건 소설이다.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


어떤 대단한 것은 어떤 사소한 것이다. 경제적인 상황 외에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높고 낮음을 비교하게 되는 또는 확인하게 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 간극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그 거리를 잘 유지하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을 테지, 또는 더 멀리 멀어져서 그대로 사라지거나 잊히는 관계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서사보다는 관계성에 주목했던 서사였다. 가족 간의 무한한 사랑과 여성으로서의 연대 그리고 한 사람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 인간관계의, 각각의 지역에서, 눈에 보이는 축적, 멀고 가까움과 같은... 그런데 그 간격은 누가 정하지?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처절하게 끔찍해서 아름다운 소설이라 생각했다. 연필을 둘러싼 식빵은 토스트에 구워야 한다. 화자는 연필 토스트를 조금이라도 먹고 싶어서 크레파스나 색연필도 넣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입에 넣으면 너무 맛이 없다고 뱉고 싶어서 또는 토까지 해 버리는데도 불구하고 먹으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말한다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에요? 사랑이란 도대체 어떤 형태를 띠고 존재하는 것일까. 누가 봐도 예쁘고 좋은 것도 사랑이지만, 기괴하고 더러워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있다는 거. 가끔은 너무 좋아서 울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슬퍼서 미친 듯이 크게 웃어 버리기도 하는 게 진짜 삶 같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동전을 주웠다. 동전을 줍는 내 손이 아무런 맥락 없이 노인의 그것으로 쪼그라들었다. '전혀 놀랄 일도 슬플 일도 아니야.' 나는 무릎을 짚은 채 절뚝이며 고분고분 빵을 다시 구우러 토스터 쪽으로 향했다. '순종은 참 고달픈 휴식이지.' 나는 허리를 두드렸지만 조금도 시원해지지 않았고 되레 손목 관절의 통증이 더해질 뿐이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먹이거나 먹이지 못하는 행위에 사랑, 슬픔, 미움, 연민 같은 감정이 얼마나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지, 음식물을 섭취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상적인 행위가 타자의 존재를 비틀어 짜내고 빨아먹는 일과 얼마나 징그럽게 연루되어 있는지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섭식이란 여간해서는 익숙해지지 않는, 영원히 이물스러운 행위다.


좋은 글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회귀하기도 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선순환을 경험하는 것은 나의 삶에 정말 건강한 회복을 선사한다. 몸도 건강해야 하는 법이지만 마음도 늘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한다. 책을 마음의 양식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절감한다.


조지 손더스는 말했다. "소설을 쓰는 데 큰 이론은 필요 없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합리적 인간이 네 번째 줄을 읽다가 다섯 번째 줄로 넘어갈 만큼 마음이 흔들릴 것인가? 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갈까?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왜 그러고 싶을까?"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정이현 (소설가)
긴 감상문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작품에 매료된 한 사람이지만 논의 초반에 나는 다소 조심스러운 유보의 입장을 밝혔다. 전적으로 작품 외적인 이유에서인데, 막 소설집 한 권을 펴낸 젊은 작가의 초기작이 대표작으로 기억되는 일이 작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조금 염려스러워서였다. 그러나 곧 기우를 거두었다. 날카로운 표창을 주저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던질 뿐 아니라, 왜 그 방향이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선수는 강호에 귀하다. 머잖아 갱신될 다음 대표작을 기다린다.





작가의 이전글 지리멸렬한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