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래? 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 를 매일 실천하며
엄마가 되면 내가 원치 않는 불특정 다수를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아이의 엄마들, 선생님, 아이와 연관된 사람들 등)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하고 전공에 회사까지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는 예체능을 (특히 디자인)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엄마들 모임을 했을 때 결혼 전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직종이 다양해서 놀랬던 기억이 난다. 회계사, 은행원, 바이어 등 지금까지 주변에는 없던 생소한 직업들을 가졌었더라. 각자 살아온 이야기, 인생관, 육아관을 공유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면이 있는 엄마들과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잘 맞아 잘 지내면 대부분 엄마와도 잘 맞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육아관을 가지고 아이를 키웠는데 그게 비슷하면 대체적으로 만났을 때 트러블이 적고 갈등이 있어도 금방 해소가 된다. 아이들 기질은 각기 다르겠지만 부모의 육아관이 맞으면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게 명확하면) 대체적으로 잘 지내게 되는 것 같다. 어느 부분은 서로 생각이 좀 달라도 그걸 인정해 주고 새로운 의견을 듣는다 생각하면 괜찮다는 걸 배웠다. 왜 저래? 가 아닌 그럴 수도 있지!로 넘기면 된다.
이 모토는 아이를 키울 때 아주 유용한데 유아 시절 (7세 이하) 겁이 많아 불안도가 높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어려워하던 첫째를 볼 때 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미끄럼틀을 무서워하던 첫째와 유치원 친구가 놀이터에 갔던 일화다. 미끄럼틀을 타러 올라갔다가 무섭다고 내려오는 걸 보고 그러려니~ 오늘도 무섭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가 그 행동을 똑같이 하니 아이 엄마가 화를 냈다. 아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미끄럼틀을 못 타요? 정말 답답하다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적잖게 놀랐다. 미끄럼틀... 타는 게 그렇게 꼭 해야 할 일인가? 그걸 타야만 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나...?
부모가 자식을 본인과 동일시하는 일들이 있다는데 그건 애정이 과하기 때문은 아닐까도 생각한다. (아이, 본인 둘 다에게 과한 애정.) 누가 아이를 나무라는것을 마치 나한테 하는 것처럼 느껴 화가 나거나 하는 상황들. 아이가 무엇인가 못하는 게 마치 내가 못하거나 잘 못 키우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들.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다 나 같지는 않구나 자연스럽게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이것이 비단 어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데 아이도 나와 다른 인격체다, 내 성격과 기절과는 반대다. 라는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쟤는 왜 저래? 저걸 왜 저렇게 해? 왜 못해?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너무 괴로운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할 일을 빨리 끝내놓고 쉬는 편인데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하려고 한다. - 물론 다 끝내긴 한다. 나 같으면 먼저 하겠다! 어휴 왜 저래. 하면 그게 괴롭기 시작하는 것.) 나와는 다르고 어느 정도 아이가 나이가 있다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그 아이가 선택한 방식을 이해하고 믿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