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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Apr 03. 2016

마법의 주문.

실화랍니다.

 오늘은 완전히 날씨가 풀렸어! 겨울바람에 도망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내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혀왔으니까 말이야. 이런 따뜻한 날에, 난 너무나도 바빴지. 오늘이 공모전 마감하는 날이었거든. 나는 원고를 내기 위해 우체국을 들렀고, 가는 김에 은행 업무도 봤어. 말 안 해도 알겠지? 송골송골 이마를 적시던 땀이 이제 축축하니 온몸으로 번져가기 시작한 걸 말이야.


 그러니 어쩔 수 없었지. 내가 카페로 간 것은. 나는 ‘뭐라도 해야지’ 변명을 읊조리며 카페로 들어갔어. 어차피 집으로 가봤자 공부는 안 하거든. 평소에도 찾는 사람 수가 적어 단골이 된 카페는 역시나 한산했지. 나 말고는 손님이 딱 한 사람뿐이었거든. 그 사람은 주인아주머니의 지인인 듯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 아 몰라, 몰라.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아. 그보다는 뜨끈한 훈기가 공전하는 내 신발 속과, 푹 퍼지는 내 몸이 중요했으니까.


 나는 당장에 카운터로 갔어. 드디어 오아시스를 찾은 모래 절은 탐험가의 발걸음이었지. 많은 음료들이 있었어. 모든 카페가 으레 그러듯. 하지만 내가 시킬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모든 카페가 그러듯. 왜냐고? 비싸니까 그렇지. 아무리 내 단골집이 싼 편이라지만, 카페라는 특성상 한계가 있는걸. 결국 내가 시킬 수 있는 건 아메리카노 정도지. 아, 그래도 사치를 부렸어. 워낙에 저렴한 카페라 아이스를 시키면 추가 요금이 붙는데, 난 당당하게 아이스를 시킬 거거든! 아, 평소의 나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사치였지. 뭐? 궁상맞다고? 음… 그 말은 작가가 되고 난 다음 갚아주도록 할게. 한동안은 궁상맞을 예정이거든.


 아무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려고 했어. 그리고 행복은 그때부터였지. 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한발 늦게 날 알아본 주인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시는 거야! 처음에는 의심했지. 뭐지? 내 얼굴에 김이라도 묻었나? 예를 들어… 잘생김이라든가….

 물론 그건 아니었지. 다, 당연하다고? 크흠, 거 너무하는구먼. 아무튼 아주머니는 한껏 놀란 목소리로 물으셨지.

 “학교 안 갔어요?”

 글쎄? 그게 그렇게 놀랄 질문일까? 나는 의아했지만, 차분히 대꾸했지. 나는 늘 선비의 격식과 체통을 놓치지 않거든.

 “오늘 수업이 없는 날이거든요.”

 그런데 글쎄 아주머니가 더 크게 놀라지 뭐야? 나 참,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니까?

 “고등학생 아니었어요?”

 !?

 당황한 와중에도 피식, 혹은 씨익. 그때 내가 온몸으로 표현한 감정이야. 그 놀람이 고작 이런 거였다니. 또 내가 어려 보인다니. ‘훗’이었어. 하지만 또 티는 내지 않았지. 앞에 말했다시피 나는 선비 중에 선비였거든.

 “저 대학생인데요?”

 아주머니는 그게 정말 쇼크였나 봐. 표정이 무슨 송중기 씨가 사실 여자라는 소릴 들었을 때 같았거든.(전국의 송중기 님 팬 분들 죄송합니다.)

 “어머나, 나는 고 1, 고 2 정도로 봤는데…”


 글쎄, 고 1과 나의 나이 차이는 8살이나 나는 걸요? 하긴 뭐, 오해하시기에 충분한 그 마음이야 이해합니다만…. 나는 내가 벌써 군대도 다녀온 4학년이란 걸, 또 25살 이란 걸 말할까 했어. 그녀의 혼란을 아주 조금 더 가중시킴과 동시에 나의 외적 어림을 더 강하게 어필하고 싶었거든.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굳이 심술부리기엔 난 좀 착했거든. 또 기분도 좋았고. 8살이나 어려 보인다 이거지? 나는 당장에 이걸 내 연인에게 전했지. 나보다 세 살이 어린 나의 그녀는 나를 화석을 넘어 석유 취급을 하거든. 훗. 말을 전하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서 혼났지 뭐야. 이러다 담 걸리는 건 아닐까 하고.


 참 우습지만, 단 몇 마디. 그래서 완벽한 날이었어. 따뜻한 햇살은 정수리부터 어루만져 머리카락, 귓불, 어깨, 등을 쓰다듬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시원했지. 익숙한 카페의 인테리어는 친근했고, 원두 향은 은은했지. 또 언젠가 내 글의 재물이었던 화분도 보였어. 아, 어쩌지? 이제는 미끈하게 빠진 원목 나무 의자마저 마음에 들어져 버렸어. 역시 난 이 카페를 자주 찾게 될 것 같아.




 참 우스운 일이지? 고작 두 문장으로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나도 꼭 기억했다가 다음에 써먹길 바라!

 봄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찾아온 3월 말 어느 날에. 이 한미루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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