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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May 01. 2016

어쩌다 마주친 운동회

당신의 김밥

 나는 철없던 둘째였다. 나 세 살적쯤에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누나와 나를 길러내셨다. 나 비록 어린 나이 모든 걸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께선 충분히 힘든 삶을 살아오셨다. 어머니는 새벽달이 가라앉기 전에 세상을 향해 가셨고, 그 달이 다시 떠오르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린 나와 고작 2년 덜 어렸던 누나는 항상 유치원에 남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돌봐줄 이 없는 집보단 안전했으니까. 초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별 차이는 없었다. 당시의 어머니는 어린 둘을 집에 둘 수 없으셨고,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딘가에 체류했었다. 돌봐줄 이도 없는 세상에선 당연히 밥을 챙겨줄 리 없었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 12시면 학교를 파했다. 하지만 당시 세상 어디에도 점심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일하게 도시락을 싸다니던 초등학생이었다. 또 유일하게 도시락조차 혼자 먹던 초등학생이었다. 그나마 누나는 고학년이라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기 때문에. 언제나 1시 언저리쯤, 텅 빈 복지관 강당에서 홀로 밥을 먹었다. 수십 개의 나무 의자 중 왼편 제일 뒤 의자 하나에 몸을 기대, 번듯한 상하나 없는 그곳에서, 아침부터 들고 다닌 도시락을 까먹었었다. 봄이든 여름이든 한 결 같이 차가운 도시락, 말라붙은 쌀알과 굳어있는 고기기름, 흘러넘친 깍두기 국물만으로 기억되는 것이 첫 번째 도시락이었다.


 운동회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날도 여전히 어머니는 바쁘셨고, 덕분에 모두가 부모님과 함께 즐기는 운동회에서도 항상 선생님의 손을 잡고 달렸었다. 다행히 어린 날의 무지 덕분에 그조차도 서러움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김없이 돌아오는 점심시간이면 나는 땅딸막하던 키보다 더 작아졌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가득 채우며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 화려한 돗자리와 더 화려한 도시락 찬합은 하나의 완전한 성과 같았고, 그 속에서 희거나 푸른 밴드를 맸던 나만은 혼자였다. 완연한 패잔병의 모습. 다만 울지 않고 버텼었다. 그러다가 누나가 찾아오면 겨우 그 손 하나를 잡고 버텼었다. 2년 터울에 차이가 나봤자 결국은 어린아이. 우리는 별 다를 바 없는 서로의 손을 잡고 버텼다. 그럴 때면 으레 도망치고도 싶었다. 화기애애하던 운동장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자꾸만 교정 뒤로 도망가고 싶었다.


 꼭 그럴 때, 서러움에 마주 잡은 손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야 당신이 오셨다. 회사에서 급히 오느라 차려입지도 못한 당신이. 뛰어오느라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착 달라붙은 당신이. 말 그대로 헐레벌떡 뛰어 오셨다. 당시 환희와 행복으로만 맞이했던 어머니의 모습. 그저 서럽던 공간을 한 순간에 녹여버리던 얼굴. 어머니는 언제나 한 손엔 치킨이 든 일회용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나머지 한 손엔 그 없는 여유 잘게 쪼개 싸오신 김밥 도시락을 들고 오셨었다.


 당신은 점심도 거르고 뛰어오셨으면서, 혹여 우리들 배고프지 않을까 양손가득 도시락을 싸오셨던 어머니. 혹시나 함께하지 못하는 축제에 서운하지는 않을까 몰래 눈물 훔치시던 어머니. 그러고도 당신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사과였다. 당신은 그동안 우리를 맡아주신 선생님들에게 사과를, 또 고마움을. 한참을 머릴 조아리고서야 값싼 은박 돗자리 위에 엉덩일 붙이셨다. 그렇게 얻어낸 시간이 40분 여. 가족이 만나 회포를 풀기에는 너무도 적은 시간. 하지만 나는 그저 당신이 싸오신 도시락이 좋아 당신이 드시는지 드시지 않는지조차 몰랐다. 따뜻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해서일까? 당신이 웃으셨는지 우셨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가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마주친 운동회에 뛰어다니는 생명들이 그리도 서럽던 이유가. 너른 운동장이 당신의 김밥으로만 가득했던 이유가.
운동회의 기억은 오직 김밥이었으니까.

 당신의 김밥은 크고 동그랬다. 당신의 마음을 담은 듯 넉넉히 들어가 있는 흰 쌀밥과, 잘 조미된 시금치, 햄, 단무지 그리고 싸고 얇은 어묵이 들어있었다. 우리가 싫어했던 당근은 없었고, 나는 싫어했지만, 누나가 좋아했던 오이는 들어있었다. 윤기를 보태는 참기름에 깨소금을 뿌린, 짧은 시간이나마 정성을 다한 김밥. 그게 당신의 김밥이었다. 그 작은 김밥 한 줄에 당신의 미안한 마음 얼마나 눌러 담았던가?

 그 마음 알 리 없는 나는 늘 당신의 정성 한 줄, 오이를 빼놓고 먹었었다. 어머니는 늘 염려어린 잔소리를 하곤 했지만, 꿎꿎하게도 빼놓고 먹었었다.




 1년에 한두 번, 관리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얻어냈을 40분. 그마저 지나면 어머니는 다시 선생님들께 머리를 숙이셨고, 자식의 힘찬 뜀박질 한 번 보지 못한 채 다시 회사로 달리셨다. 우리네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달리기.


 난 여전히 어머니의 뛰어가는 뒷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이 같이 도시락을 드셨는지도, 그 순간 웃으셨는지, 우셨는지도. 하지만 그 날 어머니의 도시락은 뚜렷이 기억한다. 어머니가 늘 싸주시던 도시락만은 기억한다. 하루에 꼭 하나씩은 넣어주시던 고기나 소시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깍두기까지. 오랜 시간에 말라붙은 쌀알까지도 기억한다.


 또한 기억한다. 어머니가 소풍이나 운동회 때 가끔 싸주시던 김밥 도시락을. 이른 아침 새벽달이 지기도 전에 출근하셨던 당신이,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 싸주신, 혹시나 늦으실까 알람을 몇 개나 맞추며 준비하던 도시락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그 도시락에 담으신 것이 사랑일지, 미안함일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김밥을 기억한다. 어느 집 어머니의 솜씨보다도 좋았고, 어느 매장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었던 어머니의 김밥을 기억한다.


 이제야 어머니의 달리기를 조금 알게 된 내가, 우연히 마주친 운동회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이제 더는 김밥에 오이를 넣으시지 않는 어머니. 나의 어린 시절은 아주 차갑고, 또 뜨겁던 두 개의 도시락으로 남아있었다.




무슨 말로 표현해도 충분치 않은 어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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