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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Jul 12. 2016

소중한 배고픔 - 치유 에세이

끄어 배고파

 월요일 아침. 13시간 째 공복을 유지하고 있었다. 뱃속에서는 보글보글 공룡이 뿜어내는 거품 소리가 났다.



 하, 아침을 먹고 왔어야 했는데…. 정작 등교를 준비할 땐 몰랐다. 이렇게 배가 고프게 될 줄은. 신체검사라도 하는 거냐고? 아니다 다만….


 어제는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고된 팀 과제를 하나 마무리한 후, 팀원들과 갖는 자축의 시간. 우리는 1차로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했고, 이 차로 맥주 집을 가 과일안주와 튀김을 박살냈다. 다이어트 중이었던 나는, 어제 하루만큼은 고삐 풀린 먹방BJ처럼 먹어댔다. ‘어차피 하루의 폭식으로 내가 바뀌지 않아!’, ‘내일부터 또 잘 관리하면 될 거야!’ 술을 앞에 둔 다이어터들의 흔한 패배변명이었다. 먹고, 마시고. 우걱우걱 꿀꺽꿀꺽. 미뤄둔 과제만큼이나 불러온 배가 똥실똥실 차올랐다. 딱 그만큼의 후회와 번뇌도 알알이 차올랐다.


 “아, 너무 많이 먹었어…. 이제 자제 해야지.”


 내 앞엔 이미 매끈히 발라진 채 남루한 닭다리와(심지어 오돌 뼈도 다 먹었다.) 부스러기만 남은 감자튀김 황무지만이 존재했다. 즉, 안주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포크를 놓았단 말이다.

 음…….

 그래서였다, 내가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은. 어제 그렇게나 많은 에너지를 섭취했으니, 오늘 아침 쯤은 걸러도 될 줄 알았다. 물론 어젯밤 폭식한 것이 다이어터의 양심을 찌른 탓도 있었다.


 “으으 배고파.”


 고작 한 시간 만에 후회했지만 말이다. 눈에는 교수님의 필기 대신 집에 두고 온 돼지 불고기가 아른거렸다.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맛. 하얀 쌀밥이나, 찰진 흑미밥에 척 올려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앗 이게 아니지. 음식 생각을 하다 보니 입에는 침만 더 고이고, 배만 더 고파지기 시작했다. 으으, 괜히 어쭙잖은 다이어트를 결심한 게 원망스러웠고, 애초에 어제 폭식을 하지 말걸 후회했다. 후회와 반성 그리고 배고픔이 번갈아 덮쳐와 공부는커녕 얌전히 있기도 힘든 최악의 상황, 역시 나의 훌륭한 합리화 기제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이 이봐, 이봐 친구.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이미 떠난 일 후회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넌 어제 맥주를 산소처럼 들이 키고, 감자튀김을 한 포크에 두 세 개씩 찔러 ‘처’먹을 때 다 예상한 거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그보다 들어봐. 지금 너는 상당한 행운을 얻은 거라고.’

 내가?

 ‘그래, 네가 항상 시간 맞춰 밥을 잘 먹고 다녔으면 지금 같은 배고픔과 아침밥에 대한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 그건 아니지….

 ‘그래! 너는 배고팠기 때문에 밥의 소중함을 깨달은 거야! 부재했기에 존재를 깨달은 거라고! 그러므로 어제의 실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어, 친구. 그러니 암울해하지 말고, 어서 정신 차려. 밥이나 먹고, 오늘 일로 글이나 쓰라고!’

 …….

 역시 나는 언변의 달인이었다.(혹은 당당히 미쳤거나.) 내가 나에게 제시한 얘기는 아주 타당했다. 그래, 우리는 항상 부재가 있었기에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고 궁핍과 간절함이 있었기에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밥 먹는 것쯤이야 굳이 쫄쫄 굶지 않아도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식사의 영양소가 몸에 끼치는 영향도 알 수 있고 말이다. 왜냐? 그건 학습했으니까! 학교와 사회를 통해서! 하지만 학습되지 못한 것들은 어떨까? 대상이 나에게만 너무 특별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 소중함을 상상조차 못하는 것이라면? 그런데다가 나 또한 대상이 너무 당연해 소중한 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오, 맙소사. 우리는 아마 잃기 전까지 대상의 소중함을 체감할 수 없을 것이다. 오 너무나 무서운 일이지, 부들부들.


 하지만 겁내지는 마라. 소중한 것은 단 한 번의 기회로 사라지지 않는다. 모습을 바꿔, 형태를 바꿔 다시 찾아올 뿐이다. 연애가 한 번이 끝이 아니듯, 다툼이 관계의 끝이 아니듯. 우리는 같은 종류의 소중함을 마주할 것이고, 한 번 잃었던 소중함과 다시 대면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 나처럼 오늘 하루를 부재에 대한 후회로 보냈다면 이 글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잃음은 후회로 점철된 최악의 실패가 아니라고. 다만 우리에게 소중함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라고.

 결핍, 부재, 궁핍, 가난, 상실 그로인해 동반이되는 그리움, 후회, 외로움, 반성, 좌절과 번뇌까지도.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소중한 지를 가르쳐주는 스승일 뿐이라고.


 마음껏 실패하라, 또 마음껏 소중히 하라. 우리의 이생이 조금 더 풍요로워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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