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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Jul 06. 2017

엄마의 크림치즈

하필 또 비는 내려 왜.

 울어 내리던 빗줄기 속, 파란 카페의 하루가 시작됐다. 매장을 청소하고, 커피를 내리고. 서늘한 바람이 지지부진한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겨우 서른이나 됐을까? 쪽진 머리를 삔 하나로 겨우 감춘 그녀가 뛰어갔다. 품에는 노란 바가지 꼬마, 졸린 눈을 부비며 가슴께로 파고들었다. 등에는 작은 가방, 노랗게 엉겨 붙어 있었다. 하필 또 비는 내려서, 왼손으로 받쳐든 우산이 휘청거렸다. 비가 내리지 않는 매장 안의 나는 그녀의 사투를 바라볼 뿐이었다. 난처함과 다급이 서린 사투는 그렇게 스쳐갔다. 무엇이 그녀를 기억하게 했을까? 어머니의 짐을 지기엔 아직 앳된 얼굴? 그 얼굴에 서린 절박? 대비되는 아이의 나른함? 아니, 팔백 원짜리 크림치즈였다.


 그녀가 다시 보인 것은 삼십분 쯤 뒤, 그녀는 축 처진 어깨로 카페 문을 밀었다. 품 안의 아이는 노오란 친구 곁으로 떠났다. 그녀는 그제야 푹 퍼진 몸, 잠시 쉬어가려 이곳에 들렸다. 야윈 뺨과 혈기 잃은 얼굴. 쇼 케이스를 한참 바라보았다.

 “저, 라떼 한 잔이랑 블루베리 베이글 주세요.”

 밥마저 건너뛴 모양이지. 수척한 뺨이 한층 피폐해보였다. 멀지않은 나이라 그럴까? 쟤 밥도 못 챙기시고 우리 밥을 준비하시던 어린 날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일까? 하지만 내 안타까움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네, 준비되면 불러드리겠습니다.”

 냉동 빵이나마 정성스럽게 굽고, 라떼를 평소보다 뜨겁게 내릴 뿐이었다. 시큰한 마음, 커피 한 잔에 위로될 리 없으나 마음으로나마. 오븐 녀석도 내 마음을 아는지, 잘 구워진 베이글에서는 산뜻한 향이 넘실거렸다.

 “라떼랑 블루베리 베이글 나왔습니다.”

 그녀를 불렀다. 가져다주고 싶지만, 특혜가 용인되지 않는 공간. 지친 발걸음을 부른 것에 사죄한다.

 ‘정성껏 내렸어요.’

 “맛있게 드세요.”

 혹여 몰라 주제넘은 말은 떼놓고, 늘 하던 말을 건넸다. 다만 영혼 듬뿍넣은 미소를 한 스푼 더 얹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이상했다.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미간을 찌푸리는 게 아닌가?

 “뭐 필요한 것 있으세요?”

 “아, 아뇨.”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빗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은 그녀는, 비치는 햇살 무색하게도 컴컴한 얼굴 갸웃거리더니, 다시 쇼 케이스로 돌아왔다. 골똘히 바라보았다.

 “아….”


 느리게 터진 탄성. 동시에 나도 알아버렸다. 그녀가 품은 의문을. 그녀는 베이글에 딸려 나오지 않은 크림치즈를 쫓고 있었다. 그래, 이해한다. 어떻게 베이글을 크림치즈 없이 먹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또 어떻게 이천 원도 안 되는 돈에 크림치즈까지 끼워 팔겠는가. 나는 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녀가 크림치즈를 시키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사치란 언제나 야위기 마련이다, 그녀의 볼 만큼이나. 어쩌면 견뎌내야 할 무게가 더 깊었을 지도 모르지. 그녀는 팔백 원의 벽을 넘지 못해 자리로 돌아갔다. 10시 47분,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간, 텁텁한 입에 넘어가지 않는 맨 빵이나 씹어댔다. 고작 팔백 원의 크림치즈, 내가 사서 건네는 것이 나을까? 하지만 나는 그녀가 품을 앞으로의 갈망이나, 평등하지 못한 서비스에 대한 다른 손님의 이의제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창가에 그녀, 비보다 젖은 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데운 라떼도 백팔십도의 오븐이 구운 베이글도 그녀를 데우진 못한 모양이다. 푹신푹신한 의자와 비가 내리지 않는 지붕아래에서도 좀처럼 활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여유라도 즐기면 좋으련만…. ‘엄마’라는 존재에겐 그 마저도 사치인 모양이다. 이제 들어온 지 30분 쯤 지났을까? 그녀는 다시 한 번 카운터로 돌아왔다.


 이제라도 크림치즈를 시키려는 것일까?

 “저…”

 아니, 이미 너무 늦었다. 베이글은 파리 날개만큼의 온기도 없이 식어있을 것이다.

 “네, 필요한 것 있으세요?”

 내 작은 마음에, 미소보다 안타까움이 배어나왔을 지도 모른다.

 “혹시 먹던 것도 포장 가능할까요?”

 “……”

 그녀가 내민 접시엔, 고작 두 입 베어먹은 베이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입은 또 왜 그리 작은지, 고작 한 귀퉁이 파인 채 남은 베이글이 미웠다.

 “네, 당연하죠.”

 나는 웃을 뿐이었다. 그녀의 첫 끼니는 고작 맨 빵 두 입이구나. 하지만 안타까움을 품는 거 우스운 일이겠지. 그녀의 인생이라곤 손톱 반틈어치도 모르는 놈이, 그저 베이글 하나에…. 크림치즈 하나 얹어 주지도 못하는 게. 나는 또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몫만 해낼 뿐이었다. 빵이 흐트러지지 않게 담고, 포장지를 잘 접어, 테이프를 발랐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베이글을 들고,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빵 봉지. 하필 세차게 부는 바람에 베이글 봉지가 금세 젖어든다.

 ‘비닐에 담아줄 걸….’

 항상 늦기만 하는 후회와 함께 그녀는 멀어졌다. 다시 나타난 그녀는 노오란 바가지머리 꼬마 손을 잡고 가게를 지나쳤다. 햇살은 비치는데, 여전히 비는 내렸다. 구름만큼이나 시커먼 가디건 등에는 노란 아기 배낭 위태롭게 걸려있고, 가득 찬 손에는 다급함이 버글거렸다. 하필 또 비는 내려서….


 나는 다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씹다 남은 빵과, 팔백 원짜리 크림치즈. 그리고 엄마의 무게. 잊을 수 없는 그녀는 이후, 다시는 베이글을 시키지 않았다.




실제 매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기반으로 씁니다. 제멋대로의 추측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픽션일지도 모르겠군요. 어쨋든 에세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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