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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Apr 11. 2021

백만 원어치의 삶

괜찮아, 잘하고 있어.

1년 전, 막 대학교 4학년이 되었지만, 아직 개강은 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함께 동아리를 했던 많은 이들이 졸업으로 떠났기 때문에 

나랑 다섯 살 차이가 나지만 죽이 잘 맞는 형 A와 둘이서 학교생활을 하게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도 1학기 수강신청이 시작되고 나서 며칠 안 됐을 때였을 거다. 오밤중으로 기억한다.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차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오토바이와 교통사고가 났다고. 

상대방이 많이 다쳐서 수술비만 천만 원이 넘게 나왔는데 보험이 없어서 큰일이라고. 

집에서도 당장은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장했다. 

내가 당장 가진 돈이 백만 원밖에 없어서 이 정도밖에 도와줄 수가 없겠다고.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형이 그동안 사람들한테 잘해준 게 있으니까 이럴 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A는 결국 고맙지만 마음만 받고 사양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연락을 끝내고 걱정이 앞섰다. 평소 말은 안 했어도 그는 내게 꽤 듬직했다. 

그해부터라면 어딘가 어울릴 데 없게 될 내게는 학교 안에서라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고가 일어났다.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오히려 그 아르바이트 때문에 막대한 돈이 들게 생겼다. 

나는 A가 벼랑 끝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에게까지 그 소식을 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새삼 내가 많은 돈을 갖고 있지 않은 걸 한탄했다.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그에게 터진 사고를 단번에 해결해줄 수 있었더라면. 

그도 나도 이렇게 애가 탈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이튿날,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도와줄 수 있다는 말 아직 유효하냐고. 

나는 군말 없이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통장에 있던 전 재산인 백만 원을 바로 보냈다. 

그는 내게 너무 고맙다고 했지만 난 그보다 훨씬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내가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던 건 다 이런 일을 위해서였구나. 

돈을 벌어놓길 잘했다. 나는 백만 원으로 그의 삶을 구해냈구나. 

그래 내 백만 원어치의 삶으로 그의 삶 전부를 구한 셈이다. 

고작 백만 원으로 사람 하나를 살리다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고작 백만 원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니! 

나는 꼴랑 백만 원을 빌려줘놓고 영웅심리에 푹 빠져있었던 거다. 

그런데 단 며칠 뒤에 이렇던 내 마음은 옥수수가 팝콘 되듯이 홀랑 뒤집어졌다.


백만 원…… 혹시 못 받으면 어쩌지……?


만약 돈을 빌려준 사이에 갑자기 우리 가족에게 갑자기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내가 가진 돈을 몽땅 빌려줘버렸다는 걸 가족이 알게 된다면? 

결국 제때 돈을 충당하지 못해 더 큰일이 벌어진다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맙소사! 

돈을 빌려줄 때만 해도 백만 원쯤이야 없어도 

당장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놓고서. 

백만 원으로 사람 하나 살렸느니 어쨌느니 하며 뿌듯함에 어쩔 줄 몰랐으면서 말이다. 

백만 원 어치의 삶이 아니라, 백만 원‘짜리’의 삶이었던 거다. 


아, 나는 절대 선량한 사람이 되진 못하겠구나. 

인간성도 천성인 거야. 선량한 사람을 아무리 흉내 낸다고 한들 본성은 바뀌지 않아. 

그런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은 내 스스로도 입이 떡 벌어지도록 놀라웠다.

     

이런 감정, 소설로 쓰기 딱이구나.

 



A는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합의금을 벌기 위해 일을 구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한 두세 달이 지나서였다. 다행히 그는 좀 나아진 듯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가 어머니에게 나와 만난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선뜻 카드를 내주셨다고 했다. 

고맙게 얻어먹었다. 당연히 우리는 술잔을 털었다. 

두런두런. 조용하고 두툼하지만 물렁물렁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느낀 것이 참 많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느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러고 2차로 중국집에 가서 중국식 냉면을 먹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형에게 돈을 빌려줄 때만 해도 무슨 영웅이라도 된 것만 같았는데, 

빌려주고 나서 사실은 못 받을까 봐 불안하기도 했다고. 

근데 진짜 한심한 게 그런 마음을 소설로 쓰기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사실 이미 그 일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멋대로 형의 일을 써서 미안하다고. 


그는 안개 같은 웃음을 짓고는 내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지독한 열정을 응원해주었다. 

문학은 문학일 뿐이라고. 작가가 되려면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 나는 그 소설로 학과 경진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자괴감을 못 이긴 주인공이 냉장고에 들어가 세상에서 사라지며 끝을 맺는 그런 소설이었다. 

나는 그 소설의 제목을 A와 나, 그리고 불안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말로 지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여전히 꿋꿋이 버티고 있는 A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런 백만 원짜리의 삶을 사는 사람도 덕분에 버티고 있다고.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먼지를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계속한다고. 

우리 중 누군가가 또 넘어지게 되면 그때도 서로가 일으켜주자고. 

그러기 위해 나도 멈추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에게 하루빨리 새 봄날이 왔으면 한다.


2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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