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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Apr 11. 2021

우리 엄마가 너네 엄마 촌티 난데

그래도 괜찮았다.

어머니는 언제 한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어렸을 때 시장에 데려갔다가 아주 잃어버릴 뻔했다고. 

한눈파는 사이에 사라져서 한참을 찾았는데, 

저 멀리서 친구랑 손잡고 울면서 엄마 찾고 있었다고. 


그 시절엔 버스를 타면 어머니는 버스 기사님에게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 하나, 어른 하나요.


마치 성씨라도 되는 것처럼, 애 하나, 어른 하나라고 했다. 

나는 당신 생에 딸려온 ‘덤’만 같은데, 당신은 날 꼭 생의 맨 앞에 두었다. 

그래 먹을 것도 내 입에 더 넣어주고 입을 것도 내 몸뚱어리에 더 입혀주었다. 


당신은 어른이다. 나는 아니다. 

내 속에는 아직 아이같이 굴려는 생각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비(非)어른이다. 비어른. 

어딘가 ‘비정상’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다. 

어른이 아닌 사람에겐 아이라는 말을 쓰니까. 


하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는 말인 것도 같다. 

어른으로서 져야 할 책임에서 한발 물러나도 좋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나는 지극히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미래를 지향하는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예전의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한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더 행복할 미래를 꿈꾸노라고 생각하곤 한다. 

오늘을 과거로부터의 연속이 아니라, 미래로에 발돋움으로 여기는 거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미래와 과거의 차이는 거기 있다. 

미래에겐 인간을 무너뜨릴 힘이 없다. 미래가 인간을 무너뜨릴 일도 없다. 

과거는 인간을 쉽게 무너뜨린다. 이미 한번 무너뜨려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나의 과거를 잘 알고, 나의 과거도 나를 잘 안다. 

외나무다리 위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아슬아슬하게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어느 순간 마주 보며 원수가 되기 일쑤다. 사람들은 그런 과거에 치부라는 이름을 지었다.

 

아무리 미래지향적으로 살아도 삶에서 치부를 철저히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치부라는 건 그렇다. 손에 편히 들고 갈 수도 없고 배낭을 메듯 어깨에 걸고 갈 수도 없다. 

늘 머리에 이고 가야 한다. 걸을 때마다 위태롭고 목이 쭈그러드는 느낌이다. 

그런 걸 떠올릴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찰리 채플린의 말에 무슨 주술이 걸린 듯,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아무 때나 갖다 붙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쓰는 사람이 몇 없는 것도 있지만,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까이서 본 인생이 비극이면 멀리서 보아도 비극이다. 

어떤 삶은 멀리서만 보아야 할 정도로 비참하다. 

인생을 희극적으로 살아본 사람만이 인생이 희극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열세 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의 내 삶에 딱 절반인 시기였다. 

그날은 무슨 학부모 수업 참관일이었는지 

반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한자리에 모였었다. 우리 어머니도 물론 오셨었다. 

그 시절엔 으레 그랬듯이, 

어른들 여럿이 모이면 누구는 귀티 나는 도시 출신이고 

누구는 빈티 나는 시골 출신인 게 뻔히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다만 열세 살밖에 안 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걸 모르고 지나쳤었다. 

그런 알아봤자 쓸데없는 것들보다 

어떻게 하면 하루를 더 신나게 보낼지가 더 중요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나이에 어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런 쓰레기 같은 것들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수업 참관일이 끝나고 이튿날인가 어느 때에, 

나와 잘 붙어 다니던 친구가 슬금슬금 다가와 두리번거리더니 귓속말로 이러는 거다.


우리 엄마가…… 너네 엄마 촌티 난데.


그 말을 들은 나는 화를 냈다거나 침울해하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진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로 촌사람이었다. 

시골에서부터 가난하게 자라 도시로 올라왔지만 

그래봤자 가난했던 티를 벗어나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아등바등 돈을 아끼며 살아오셨던 거다.

 

그 말을 했던 그 애의 어머니는 확실히 귀티 나는 양반이었다. 

우아하고 하늘거리는 옷차림이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어머니는 당연히 촌티가 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 애는 과연 무슨 의도로 내게 그 말을 전했던 걸까. 

그 애의 그때 얼굴을 떠올려 보면 

자기도 누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어쩌면 내게로부터 죄책감을 느껴 고백했는지도 모른다. 

열세 살이었던 나도 그 애가 날 상처입히려고 그 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뒤로 우리 어머니가 부끄럽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우리 어머니는 정성껏 차려놓은 반찬을 

편식 때문에 변기통에 버려버리는 아들이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 어머니를 위해 화를 냈어야 했나 싶다. 

그러나 나도 몰랐던 거다. 그런 일을 당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 삶인지. 

비참한 일을 당해도 비참한 줄을 몰라서, 

더 비참했던 그 시절이었다고 떠올리는 것밖에는,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인 거다.          


21.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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