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아드님이 왔다 가셨는데, 굉장히 흥분하시고 해서 저희 보안요원 통해서 진정하시도록 일단 안내를 해드렸어요"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막내 놈이 원래 욱하는 놈이어서..."
"다치거나 하는 상황은 다행히 없었으니까 괜찮아요."
"네, 네... 그 어머님은 위독하신가요?"
"아뇨, 보호자분. 담당 과장님은 아마 내일이나 모레까지 경과 조금 지켜보고 일반병실 가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네? 일반병실을 가요? 왜요? 상태가 위중하다면서요?"
보통의 보호자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도 이때쯤 눈치를 챈 거 같다.
"일반병실에서 치료를 진행해도 괜찮을 정도의 컨디션이셔서 갈 수 있는 거고요, 중환자실 특성상 언제 갑자기 악화될지는 저희도 장담드리지 못해서 일단 모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럼 아직은 악화된 상태인 거예요?"
"...... 상태가 변화되거나 악화되면 저희가 먼저 연락드릴게요, 보호자분"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한결같이 오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보호자들이 너무 이상했다. 할머니가 어떻게하다가 오시게 됐는지 다시 처음부터 차트를 열어보았다.
상환은 2020.05.09 16:20분경에 화장실을 가려고 하다가 넘어지면서 발생한 'pelvis pain'을 주소로 내원함. 평소 집에서 누워서 생활하시는 분이며 내원 당일 방에서 혼자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넘어져있었다고 함. 치매가 있어 정확한 사고 상황 파악 어려움. 보호자 진술.
지극히 평범한 내용의 차트였다. 대부분 고령 환자들의 전형적인 낙상 사고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지 모르겠다.
"과장님, 보호자분들 면담할 때 이상하지 않았어요?"
"뭐 이상한 거 없었는데? 왜?"
"계속 전화 오시긴 하는데 그건 뭐 걱정되니까 그럴 수 있다 치고, 뭔가 통화 내용도 이상해요. 상태가 악화되기 바라는 사람처럼, 보호자들이 다 같은 뉘앙스로 얘기하던데?"
"그래? 다음 면담 때 한번 물어보지 뭐. 할머니는 뭐라셔?"
"그렇네, 따로 물어볼 생각을 못했네요"
보호자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할머니한테 직접 물어볼 생각을 못했다. 그렇지만 워낙 치매가 있으셔서 정확한 대화가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