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선생님)
(선생님!)
(저기요!)
왜 불러도 오지 않을까 생각을 하다가도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힘이 빠진다. 팔다리도 못 움직이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눈만 뜰 수 있는데 왜 살아있을까. 아니면 죽었는데 내가 눈치를 못 챈 것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눈뜨기로는 새하얀 천장만 바라보는 게 전부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며칠인지, 내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는지, 시간 개념도 사라졌다. 옆에서는 기계소리, 알람 소리, 고함, 사람들의 대화가 들리는데 그저 들을 수만 있지, 무슨 일인지 볼 수가 없다.
어느 정도 입원 생활에 적응해서, 이제는 같은 시간에 오는 x-ray 찍는 선생님을 기준으로 하루를 잡았다. 다음 x-ray를 찍을 때면 '하루가 또 흐르는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퀴 구르는 소리와 함께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이론아, 피검사할 거야. 조금 따끔할 수 있어"
(끄덕끄덕)
간호사 선생님은 다른 환자들한테도 똑같은 말로 피검사를 하신다. 그런데 난 아픔이라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머리만 존재하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현실 세상과는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끝이 없는 생각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 게 생각하기 편했다. 하지만 어두운 세상은 너무 무섭다. 생각이 자유로워지면서 항상 무서운 상상으로 끝이 난다. 알 수 없는 형체의 무언가가 내 몸을 뜯어먹고, 나는 머리만 겨우 살아남는 꿈. 그런 꿈을 꾸고서 눈을 뜨면 저릿한 느낌이 온몸을 소름 돋게 만든다. 기분 나쁜 꿈을 꿔도 소리 한 번 낼 수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저 뜯어 먹히면 먹히는 데로 기다려야 했다.
"피검사 끝났다. 괜찮지?"
(끄덕끄덕)
"오늘도 표정이 안 좋네. 밤에는 잠도 안 자고. 잠 잘 자고 좋은 생각 해야 빨리 나을 수 있어. 엄마, 아빠가 매일 힘내라고 전해달라고 우리한테 전화해주시는데 이론이도 힘내야지"
(끄덕)
어차피 머리만 남아있는데 무슨 힘이 날까. 힘줄 수 있는 곳이라곤 얼굴 표정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