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이론 Dec 06. 2021

5-5. 오억년버튼

천장 말고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수술 부위 소독할 때, 대변을 봤을 때, CT 찍으러 갈 때뿐이다. 옆에 아저씨는 왜 저렇게 소란인지, 반대쪽 아줌마한테는 왜 이렇게 알람 소리가 들리는지, 중환자실에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는지 찾는 시간이다. 나는 콧줄로 밥을 먹고 목에 관이 달려있어서 바람이 새는데. 눈코입은 있지만 쓸 수가 없는데. 나름대로 체념했지만 가끔은 너무 화가 난다. 왜 엄마, 아빠는 계곡을 놀러 가자고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했는지. 형은 거기서 뭘 했길래 나를 이 지경이 될도록 아무것도 안 했는지. 진짜 목소리만 나오면 씨발. 나도 욕할 줄 아는데. 이빨이나 꾹 씹어가며 화를 내는 게 전부다. 어차피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데 그냥 안락사하는 방법은 없을까?


"@>#~! 컨디션이 조금 쳐지나? 영상에서는 뭐 안 보이는데. 이론아, 의사 선생님이야. 요새 잠도 잘 못 잔다며?"

(끄덕)

"수면제 조금 처방해줄게. 잠 잘 자야 빨리 나을 수 있어"

(고 싶어)

"죽고 싶다고? 이론아, 큰 수술 잘 끝냈어.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해서 힘들겠지만 앞으로 재활도 남았고. 이론이가 잘 해내 줘야지"

(죽여줘! 아아악! 죽여줘!)


남은 얼굴 근육을 쥐어짜며 내 분노를 표현했다. 알아들은 건지 지들끼리 속닥이다가 의사들은 떠났다. 이게 무슨 치료고, 이게 무슨 회복인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죽고 싶다는데, 내 목숨은 내가 선택할 권리가 있는데. 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놓고 살려놨네 마네 하는지. 이게 사는 건지 과연 의사들은 느껴보기나 했을까? 다들 원하는 데로 손발 움직이고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환자들은 그렇게 못하는데 다 살려놓은 척.


재수 없다.



이전 18화 5-4. 오억년버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