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회복되고 있지만 마음은 쉽게 낫지 않더군요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외상센터.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Trauma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어떠한 사고로 인해서 온 환자의 치료가 중심인 곳이지만 Trauma의 첫 과정부터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대부분 교통사고(요즘은 킥보드 사고가 유난히 많다), 낙상, 추락, 화상 등 질환으로 인한 것이 아닌 우연한 사고를 시작으로 가장 일차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하며 병원 생활이 시작된다. 정신없이 구급차에 실려 외상센터로 이송이 되고, 그 와중에 보호자와 연락을 하며 보호자에게도 트라우마를 전달하게 된다.
환자는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정신줄 하나 겨우 붙잡으며 버티고 있고, 오늘도 온갖 검사와 시술, 수술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이라도 가게 되면 지옥 같은 시간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
"눈앞에서 가슴팍에 피부 칼로 찢어가지고 호스를 콱 꽂는데 미치지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인가 뭔가를 맞아도 전혀 효과 없어"
"나도 아픈 환자지만 저 맞은편 사람은 거의 산송장처럼 보이던데... 입원하는 동안 그냥 천장만 보고 누웠지"
"중간에 기억이 하나도 없고, 정신 차려보니까 인공호흡기 겨우 떼고 벌써 2주가 지났대"
중환자실에서 alert(의식이 명료한)한 환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다친 곳이 많을수록 그만큼 치료과정도 굉장히 혹독하다. 의료진들은 늘 마주하는 상황이다 보니 환자의 감정을 섣불리 예측하며 대처하지만 환자 본인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모든 상황이 두렵고, 무섭고, 걱정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치과를 가면 날카로운 기계소리와 마취된 입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이 무서운 것처럼 말이다. 치과도 편하게 가기 힘든데 몸에 꽂는 튜브, 목에 집어넣는 인공기도관, 요도에 집어넣는 소변줄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이런 상황 하나하나가 스트레스로 작용하며 환자에게 있어서 이차적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병원 밖에선 보호자들이 환자상태가 좋아지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다. 오늘은 무슨 검사를 했고 무슨 시술을 하고. 전화로 설명은 열심히 귀담아듣지만 사실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머리에 출혈이 있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치료 과정은 왜 이렇게 진행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의료진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보호자들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시간이 제일 끔찍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잠도 편하게 자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이 다치고 나니 그 빈자리는 나머지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서로 의지하며 친척, 친구, 지인들이 도와주고 이해해주면 참 좋으련만, 이런 상황에서 언성 높이며 싸우지만 않아도 반은 성공일 정도로 관계라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보호자들은 이차적 트라우마가 남게 된다.
다친 몸이 나아가는 중이지만 마음의 트라우마는 환자, 보호자 모두 점점 쌓여가고 있다. 환자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이제 병동으로, 재활병원으로, 더 나아가 퇴원까지 하게 되지만 많은 분들이 이 과정에서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정신건강의학과를 주기적으로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곧 사회로 복귀를 해야 하나 마음처럼 쉽지 않고, 기존에 있던 자리마저 유지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렇듯 트라우마는 그다지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또 다른 문제로서의 트라우마를 만들게 되고 어느새 두려움 가득한 '나'가 되어있다. 병원에서의 과정으로 글을 썼지만, 사실 트라우마를 겪어본 사람은 자신의 사건을 대입하여도 이런 흐름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 아마 많은 이들이 각자마다 트라우마를 갖고 살고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건만 생각해서 그들에게 '네 마음 이해해'라고 하는 것은 너무 평면적인 위로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