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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16. 2021

3-1. 산적 아저씨

소심한.

"mental은 아직 drunken state구요, seizure lab 금방 나갔습니다"

[술 취한 상태. 경련의 원인을 찾기 위한 피검사 시행]

"환자분, 눈 떠봐요! 정신 차리고 눈!"


덥수룩한 수염, 산적 같은 풍채의 한 아저씨가 입원했다. 응급실에서 올려 보낸 환자 물품에서는 꾀죄죄한 옷가지들과 알 수 없는 악취로 나를 기선 제압했다. 기저질환, 복용 중인 약, 보호자 연락처 등 기본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따로 없는 무연고자인 듯하다. 술이 깨기 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몇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조용히 뜬 채로 두리번거리고 있다. 여기가 어딘지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이 한두 번 경험해본 게 아닌 것 같다.


"나 병원에 입원했어요?"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성함 말씀해주세요"

"박길동이요"

"어디 사세요?"

"그냥 여기저기... 나 여기 있어도 돈 없는. 집에 갈래요"

"중환자실에 입원했어요. 충분히 검사도 해야 되고 여기서 퇴원했는데 또 경련해서 쓰러지면 어떡해요. 쓰러질 때 이번처럼 다른데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땐 진짜 큰일 나요."

"돈이 없는디..."


마지못해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다시 자는지 이불을 머리까지 올린다.


"내일 brain CT 아침에 f/u 할게요."

[뇌출혈 감별 위해 추적관찰]

"OT/PT 도 뜨고 다른 lab 들도 뜨는데 GI 협진 작성은요?"

[피검사에서 간 기능 수치 올라서 소화기내과 진료.]

"마침 이제 쓰려구요. 술을 엄청 드시는 분인 거 같아요. DT 나타나면 난리 날만 한 몸집이신데..."

[DT : 알콜 의존이 심한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섬망 증상.]


내일 처방을 마무리할 때 즈음 저녁식사가 나왔다. 어젯밤 사고가 난 뒤로는 금식이었다가 하루 꼬박 지나고 나서 병원에서의 첫 식사를 드시게 되셨다.


"박길동 님, 식사 드시게요. 죽에 간장 뿌려드릴까요?"

"내가 할게요"


라면프보다 작은 간장을 쥐려고 하니 손이 덜덜덜 가만히 있지 못한다. 천천히 쥘 때까지 기다려본다.

몇 번 휘휘하다가 금세 수저를 집었다.


"그냥 먹어야긋다"

"제가 간장 뿌려드릴게요"

"그냥 먹을게요"


수저도 덜덜덜 가만히 있지 못하지만 이건 익숙한지 흘리는 것 없이 잘 드신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전투적으로 식사를 시작하셨다. 잠깐 다른 환자 식사 준비하러 간 사이, 5분도 채 안돼서 순식간에 반찬까지 싹 마무리하고는 다시 잘 채비를 하고 있다.


"약은 먹고 자야죠. 하루 종일 해 뜰 때 자다가는 이따가 밤에 잠 못 자요."

"예"


산적 같은 첫인상에 비해 고분고분 치료에 협조적인 모습이다. 말수도 적고 다른 컴플레인도 전혀 없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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