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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17. 2021

3-2. 산적 아저씨

흥분한.

신경외과팀이 회진을 돌고 있다. 아침에 찍은 CT상 뇌출혈이 늘지 않고 급성기는 무사히 지나간 듯싶다.

산적 아저씨는 해가 이미 중천인데도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길동 씨, 회진 왔어요. 다시 주무시나요?"


담당 과장님은 어색한 인사를 건네며 이불을 걷어내 본다. 자는 사람의 눈빛이라기엔 굉장히 똘하게 과장님을 쳐다보고 있다.


"안 주무시고 계시네요? 아침 CT에서 다행히 뇌출혈이 늘지 않았어ㅇ.."

"퇴원할게요. 그럼"

"아직은 퇴원할 정도 컨디션이 아니에요, 환자분. 일반병실로 올라가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어도 아직 퇴원은 못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이불을 뒤집어쓴다. 무안한 표정으로 담당 과장님은 일반병실로 올라가자고 얘기했다.

점심식사도 역시나 다람쥐처럼 호로록하고 순식간에 해치우고서는 이불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일반병실로 전실하기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나고 환자 짐도 슬슬 정리하기 위해 환자 물품보관 칸으로 갔다.


"저기요, 요 앞에 주차해놨는데 제가 차키를 잃어버린 것 같네요"


뜬금없는 얘기와 초점 없이 풀린 눈, 식은땀.

예상대로 DT가 시작됐다. 몸에 달린 심전도 라인, 산소포화도 라인을 슬슬 만지작 거리며 금방이라도 침대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 모양새가 무슨 사단이 날 듯 싶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이요? 박길동이죠. 허허. 이름은 왜요? 나한테 관심 있어요?"

"여기 어딘지는 알겠어요?"

"차 빼러 가야하는디. 나가는 문이 어디예요? 이상허네. 문이 어디있더라"


침상 난간에 발을 걸치고 한 손으로는 반대쪽 손에 꽂혀있는 주사를 뽑으려고 한다.


"박길동 님, 여기 병원이에요! 병원! 주사 뽑으면 안 돼요. 발도 다시 집어넣으시고! 떨어지면 큰일 나요!"

"차 빼야 한다니까 왜 그래요! 에잇 씨발"

"선생님, 여기 좀 도와주세요, 잡아야겠어요"


거구의 아저씨는 온몸을 써가며 발버둥 치는데 나 혼자로는 역부족이다. 간호사 서너 명이 달려와 흥분한 아저씨를 겨우 붙잡았다.


오늘 일반병실로 이실가는 건 꿈도 못 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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