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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19. 2021

3-4. 산적 아저씨

섭섭한.

다음날, 사회사업팀에서 전화가 왔다. 무연고자인 아저씨에 관한 전화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아저씨와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면담이 잘 안 풀리는지 서로 답답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것저것 서류를 설명하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과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는 아저씨의 모습은 이전에도 여러 환자들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퇴원한대니까, 왜 데리고 와서..."


사정이 딱한 것은 알지만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참 힘 빠진다. 섭섭한 티가 팍팍 티 나게 식사를 준비해준다. 역시 우리 눈치를 살피던 아저씨는 넌지시 얘기를 꺼낸다.


"내가 쓰러져도 병원 안 오는 그런 서류는 없어요?"

"쓰러지면 병원에 오셔야죠, 당연히"

"어짜피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지옥인데 마침 쓰러지면 그 김에 눈 감지. 왜 자꾸 살려서 또 빚지게 하는지"

"평소에 건강 챙기고 하시면 되죠, 술 줄이고"

"에휴"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듯한 한숨이다. 괜히 또 미안해지게 만드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담당 과장님도, 사회사업팀까지 연결된 상태에서 환자가 강력히 퇴원을 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퇴원하고도 스스로 건강관리가 될지 고민을 하고 있으시다. 지금이야 우리가 제 때 식사 챙기고, 약 챙기고 하지만, 밖에서도 지속 가능할지.

하루 꼬박 지나 다음날 오전에서야 결단을 내리셨는지 중환자실에서의 퇴원을 진행하자고 하셨다.


"박길동 님, 퇴원하시고 술은 절대 드시면 안돼요. 최소한으로 줄이기라도 하셔야 돼요"

"예"

"약도 잘 챙겨 드시고 예약 외래 날짜에 꼭 오세요"

"예"


금주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퇴원 교육을 끝냈다. 열흘 정도 묵혀있던 꼬릿 한 냄새의 옷가지들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옷을 입고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두리번거리며 수염 없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고생했슈. 어디로 나가면 됩니까?"

"우리 선생님이 같이 안내해드릴 거예요. 아저씨도 고생 많았어요. 이젠 중환자실에서 우리 서로 만나는 일 없어야 돼요. 또 만나면 그때는 진짜 하늘나라 가요"

"예"


아저씨는 여전히 단답형이다. 무심하게 중환자실 밖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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