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얼마나 드시는 분인지 아직도 섬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공격적이진 않지만 말이 엄청나게 많으시다. 아침부터 밤새도록 쉬지 않고 혼잣말을 하다가, 옆에 누가 지나가면 지나가는 사람 불러다가 끝없이 말을 해댄다.
"내가 옛날에는 그 어디냐 터미널 쪽에서 살았그든. 그땐 그래도 적당히 살만했어. 지금은 자유인이지 자유인 허허헛"
"여, 여, 어제 내꺼 갖고 튄 그놈새끼 못봤나? 한 두번이 아녀 그 새낀"
이렇게 이틀 내내 수다를 떨다가 지쳤는지 그제야 잠에 들었다.
고작 5분 정도.
"가위 있나? 손이 묶여가꼬 이거 잘르야되는디"
"여기 병원이에요, 병원. 새벽 3시인데 이제 졸릴 때 되지 않으셨어요? 이틀 동안 잠도 안 주무시고"
"잠은 죽어서 자야지. 잠자믄 금방 죽어"
아저씨의 두서없는 산만한 수다에 나이트 근무 내내 시달렸다. 아침 즈음돼가니 조금 조용해졌다. 이젠 몸이 못 버텨서 잠에 드는 것 같은 분위기다. 중환자실의 아침은 굉장히 정신없고 분주하지만 약속이라도 한듯 아저씨 침상 반경 2m 내에선 모두들 정숙을 유지했다. 심지어 옆 자리 환자분도 이제야 자냐고 신기해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본다.
"마지막 CT도 괜찮고 정신만 좀 깨면 일반병실 며칠 있다가 퇴원하도록 하죠"
회진 내용도 많이 간결해졌다. DT만 아니었어도 일반병실에서 약물 치료하며 벌써 퇴원 준비를 했을 텐데, 역시 술이 왠수다.
오전 내내 기절하듯이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자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가 밤늦게 돼서야 조용히 눈을 뜨고 있다. 숙면을 취했는지 확실히 눈빛이 이전과 비슷해졌다. 그리고 신기하게 말수가 다시 줄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 이름이 뭐예요?"
"박길동"
"다시 말 줄어든 거 보니 좀 깬 거 같네, 그죠?"
"..."
아저씨도 긴 꿈을 여행하고 왔으니 도통 무슨 일인지 파악이 안 될만하다. 꿈속 여행 동안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손발 각질도 로션으로 열심히 문질러놨는데 그게 영 어색한가 보다. 계속 턱을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