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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혜 Feb 08. 2021

달리기 일지 + 9

시간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Episode 9. Dare tempo al tempo

9일간 달리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1km 당 7분대에 맞춰서 뛰는 것이 나에게 맞는 속도라는 것. 적당히 버겁고 적당히 뿌듯하다. 오늘은 2km까지 7분대를 유지하다가, 막판에 배가 부글부글 끓어 올라 걸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사실 나는 장이 좋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음식이 상하거나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면 바로 몸 한 구석에서 바로 반응이 온다. 그래서 먼길을 갈 때는 근처에 화장실이 있는지 꼭 확인한다. 겨우 4km를 완주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검색한 게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화장실'. 찾아보니까 군데군데 있기는 하지만 많이 없단다.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목표 하나, ‘장에 좋은 음식 챙겨 먹기'.

요즘 나의 모닝 루틴은 오전 8시에 시작된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해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꾸준히 할 자신이 없어서 보류 중이다. 아침에 달리는 습관이 조금 더 자리를 잡으면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9시쯤 집 밖을 나선다. 일주일 조금 넘게 달려보니, 4km를 달리면 대략 35분에서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제는 일정한 속도로 시간에 맞춰 달리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한 달 정도 꾸준히 달리면 30분 안에는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문제의 마스크! 마스크를 쓰고 달리니, 달릴 때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러닝용 마스크를 알아보고 있는데, 지금 사기엔 이른 것 같고 100km 달성했을 때 내게 주는 선물로 사려고 한다. 확인해보니까, 지금까지 총 37.3km를 달렸더라. 기록한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아침에 달리다 보면, 한 손엔 봉투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집게를 들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가슴 한편에, ‘노인 사회 활동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적혀있는 명찰택이 달려 있었다. 뛸 때마다 종종 어르신들을 마주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빈 봉지는 담배꽁초와 여러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해." 엄마가 항상 내게 하는 말이다. 엄마는 죽어도 백수로는 안 살 거란다. (엄마 지금 딸이 백수야).

어제는 책상을 정리하는데, 나뒹구는 수첩 하나를 펼쳐보니 친언니가 취준 때 쓰던 플래너였다. 그리고 맨 앞장을 펼쳐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Dare tempo al tempo 시간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어려운 단어 하나 없는 이 문장을 한참 동안 꼭꼭 씹어 읽었다. 맞다, 시간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지나간 날들에 좀 더 담백해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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