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다르게 키울래.
이번 주 내내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아이랑 줄넘기를 하느라
오후엔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지냈다.
우리 둘째 아이는 이른둥이로 태어나 여러 가지 약한 부분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폐... 엄마 뱃속에서 마지막으로 완성되는 장기가 폐라고 들었다. 조산기가 있어 병원에 달려갔을 때 바로 폐성숙주사를 맞고 조산집중관리실에 들어갔다. 결국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한 달을 버텨 27주 만에 출산을 했다. 백일잔치도 신생아실에서 했고, 이후 집에 와서도 오랫동안 산소를 코에 달고 심장박동수와 포화도 측정하는 기기를 몸에 장착한 채 생활했다. 위까지 연결된 관도 아주 오랫동안... 암튼 그랬다! 뭐 지금은 11년 전이니 그야말로 옛날이야기다. (혹시 현재 그런 상황에 처한 분이 있다면 희망을 가지시라고.. 조금 자세히 적어봅니다.) 고작 1080g에 폐가 안 좋은 아이로 태어난 아이한테 한글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을 찌우고 숨을 잘 쉬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나는 하루에 네 끼를 먹이고, 상황만 되면 놀이터에서 살았다. 종종 허무하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답답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른둥이로 낳았다는 죄책감이 컸다. 네 살 무렵부터는 수영장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였을까? 아이가 친구들하고 잘 논다. 그리고 몸집이 커져서 어디 가서 이른둥이로 태어났다고 하면 다들 안 믿는 눈치다. "그럴 리가?" 하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로얄햄지(햄스터)라 불리며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 우리 집 늦둥이. 그렇다고 잘못하는 걸 그냥 둘 수가 있나! 참다 참다 좀 뭐라고 훈육이라도 할라치면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위기를 잡는다. 당장 언니가 달려와 나를 말린다.
"엄마, 로얄햄지잖아... 나한테 하듯 그러면 안 되지..."
아이고 속 터져.
지난주는 등교 주간이라 아이가 학교에 갔다. 체육시간에 친구들은 줄넘기를 끝없이 끝없이 하는데, 자기는 너무 못한다며 속상해한다. 아빠랑 주말에 몇 번 연습을 했는데도 잘 안된단다. 코로나 상황이라 수영장도 못 다니고 주말에 산에 가는 것도 작은 사정이 생기면 갈 수가 없으니 잘됐다! 이 참에 아이의 폐 건강을 위해 줄넘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얘, 왜 이렇게 줄넘기를 못 해?
갑자기 오래전 큰 아이와의 어떤 날이 떠올랐다.
자랑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나는 리액션에 도가 튼 인간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나는 예능국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 만난 선배들은 대부분 웃기기에 인생을 건 듯 보였다. 선배의 액션에 일단 나는 리액션! 하여간 웃기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사무실에 모여 회의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웃기기 위해 던진 액션을 다른 사람이 받아 리액션! 그걸 또 누군가 받아 액션! 리액션! 어쩌다 나의 리액션이 액션처럼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면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루 종일 어깨가 으쓱했다. 하지만 회의시간에 말 몇 마디로 웃기는 것과 그것을 원고로 작성해 촬영을 거쳐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낼 최종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웃기지 않으면 우연히 옆에 있던 제3자라도 갑자기 비난을 할 수 있고, 그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야? 안 웃겨!" 그럼 끝이었다. 게다가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완성도가 있고, 없고는 그냥 한눈에 판가름 났다. 일종의 단두대 같은 느낌. 목이 잘리는 순간이 두렵고, 늘 무서웠다. 이후, 회사에 들어가 여러 클라이언트를 만나 일을 하면서도 나는 대부분 그들에게 지적을 받는 입장이었다. 원고를 쓴다는 것이 좀 그렇다. 노트북 컴퓨터를 탓할 수가 있나! 마우스를 탓할 수도 있나! 그저 내 아이디어와 생각이 잘못돼 재미가 없고 공감도 안 간다는데 어째! 그저 내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완벽하게 클라이언트 마음에 들고 싶다! 최선을 다하자!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클라이언트를 완벽하게 감동시키자! 내가 지금 하는 이 작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포인트는 어디일까? 혹시 놓친 게 있나?'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다음 의뢰도 나에게 올 테니까!
문제는 내가 직업적으로 한창 물이 올라 완벽을 향해 달리던 그때,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받아쓰기와 일기 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받아쓰기는 백점을 받는 게 당연했고, 특히 일기 쓰기... 이건 정말 잘 써야 했다. 1, 2학년 때야 대충 넘어갔지만 점점 제법 글씨처럼 보이는 글씨를 쓰고 분량도 늘어나자 드디어 내 눈에 수정사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정을 안 해도 분명 읽을 만했고, 재미도 있는 글이었지만 그래서 더 욕심이 났다. 수정으로 고칠 수 없는 일기는 아예 버리고 다시 쓰자고 했다. 지금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땐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수정사항을 고치는 건 너무나 옳은 일이니까. 분명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했던 건데... 그러니까 그게 바로 문제인 거다! 착한 초등학생 여자아이인 딸은 엄마 말을 잘 들었다. 하기 싫어도 엄마가 하라는 데로 일기를 고쳤다. 하지만 엄마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더 완벽해야 했다. 마지막에 대 여섯 줄 분량의 단락 하나를 더 쓰게 했다. 진절머리를 내며 그 마지막 단락을 쓰던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봐야 초등학교 3, 4학년 작은 아이였는데...
그리고 그다음, 바로 줄넘기였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이게 갑자기 발목을 잡았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거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는 이사를 했고, 전학까지 했다. 그런데 줄넘기가 안되니 아이가 주눅이 들어 학교 생활을 힘들어했다. 게다가 그 시절 담임 선생님은 정말 최악이었다. 혼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줄넘기를 가르쳤다.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저녁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에게 줄넘기를 가르치느라 미치고 환장할 노릇. 남편도 나도 줄넘기를 잘하는데, 왜 못할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발을 높이 뛰어라, 팔목만 돌려라... 가볍게 뛰어라... 꽝꽝 뛰지 말고 퐁퐁 뛰어라! 하지만 그 어떤 가르침도 적용이 안됐다. 왜 안되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딸의 줄넘기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우리 집 로얄햄지는 줄넘기를 못해도 큰 아이한테 하듯 막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다. 운동하러 나오기 전 스스로 알아서 벤 토리니 흡입기로 기관지를 확장시키고 나온 아이다. 그 와중에 마스크까지 끼고 줄넘기를 하고 있는 저 숨이 찬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말한다고? 그건 정말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잔인한 일이었다. 뭘 할 수 있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아이를 위해 정말 잘할 수 있는 게 있었다. 나는 리액션의 달인이 아니었던가! 갑자기 잔소리 훈육 가르침 모드에서 리액션 모드로 뇌를 바꿨다. 그리고 신들린 리액션을 시작했다.
" 대박.. 왜 이렇게 잘해? 완전... 느낌 왔지? 뛰는 느낌이 아까랑 달라졌잖아!"
" 손목... 너무 잘 돌려! 완벽해! 발 끝으로 퐁퐁 뛰는 거 봐 완전 난리 났어! 난리..."
" 엄마가 비디오 촬영해서 언니랑 아빠한테 보낼게 자, 이제 완전 마음 딱 먹고 신기록에 도전해볼까? 응?"
" 와... 찢었어. 이건 미친 줄넘기야!!! 솔직히 인정? 인정! "
월요일에 열개도 못하던 아이였는데, 목요일인 어제 무려... 51개 신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바보 같은 엄마였다. 내가...